理學산책

■ 웜홀이 타임머신 열쇠

kongbak 2007. 12. 20. 11:25

■ 웜홀이 타임머신 열쇠

 

스티븐 호킹 박사의 블랙홀 개념도. 블랙홀이 끌어들인 가스는 블랙홀 주위를 도는 가스원반을 형성한다. 원반 안에서 회전하는 가스는 주위의 가스와 마찰을 일으키고, 그 결과 속도가 떨어져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웜홀을 이해하려면 우주에 있다는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이해해야 한다. 세 가지 홀은 모두 우리의 상식에서 벗어난 이상한 천체(시공간)라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의 상식에서 어긋나는 까닭은 이들 세 홀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지구나 태양의 중력에 비해 엄청나게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블랙홀이란 간단하게 말해 ‘물질은 물론이고 빛조차 빨아들여 검게 보인다’라고 간략하게 설명된다. 원래 현대의 블랙홀 개념은 18세기 말에 생긴 것이다.

영국의 존 미첼(John Michell)과 프랑스의 피에르 시몽 드 라플라스(Pierre Simone de Laplace)는 각각 독자적으로 뉴턴의 법칙을 사용해 특정 물체의 탈출 속도를 계산하면서 가상 물체에 대한 탈출 속도를 검토했다(지구의 경우 탈출 속도는 초속 약 11킬로미터, 달의 경우는 약 2.4킬로미터). 그들이 생각한 가상의 물체는 아주 좁은 공간에 질량이 밀집돼 있는 별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아주 작거나 밀도가 아주 높은 별이라면 탈출 속도가 빛의 속도를 넘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그 별에서는 빛을 포함해 그 어떤 것도 탈출할 수 없다는 계산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천체가 ‘보이지 않는 별’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설명한 것이 바로 블랙홀이란 사실을 과학자들이 깨달은 것은 무려 200년 후이다. 사실 ‘블랙홀(black hole)'란 용어 자체는 1960년 후반에 가서야 존 휠러(John Wheeler) 교수가 만든 것이다.

블랙홀의 특징은 막대한 중력을 가지고 그 주변의 모든 물체를 일방적으로 삼켜버리는 데 있다. 여기에서 일방적이라는 뜻은 일단 검은 구멍 속으로 들어간 물체는 다시 검은 구멍의 중력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블랙홀에 들어간 물체가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은 탈출속도가 중력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중력을 이길 수 있는 속도만 있으면 언제든지 탈출이 가능하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블랙홀은 별의 진화이론에 따라 생긴 이론으로 일반적으로 별의 진화에서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긴다. 그 중에서도 질량이 큰 별, 특히 태양보다 30배 이상 질량이 큰 별은 블랙홀이 되어 생을 마감한다. 실제로 태양이 블랙홀이 되려면 반지름이 3킬로미터, 지구가 블랙홀이 되려면 1센티미터 정도로 작아져야 한다. 사람의 경우 전자(10-18m)보다 1천만 배나 더 작아져야 한다. 이론적으로 가장 작은 블랙홀의 질량은 10만 분의 1그램이다. 이렇게 작은 블랙홀은 고온고압 상태였던 빅뱅 때 만들어졌다고 추정된다.

여하튼 천문학자들은 별의 시체로서의 블랙홀을 찾는 데 주력했다. 블랙홀은 이름 그대로 아무런 빛도 내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주공간에 홀로 있으면 관측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학자들은 블랙홀이 쌍성을 이루고 있을 경우에 방출되는 X선을 관측하면 블랙홀의 존재를 알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타임머신의 관건은 웜홀

웜홀, 즉 벌레구멍은 블랙홀의 사촌뻘이 되는 시공간이다. 우주(시공간)의 구조를 결정하는 중력방정식에 의하면 블랙홀과 비슷한 성질을 갖는 웜홀의 해(解)가 자연스럽게 얻어진다. 그런데 이 웜홀이 학자들의 주목을 끄는 이유는 시공간 사이를 잇는 좁은 지름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웜홀은 간단하게 사과 위를 기어가고 있는 벌레에 비유된다. 사과 표면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2차원 공간의 벌레는 표면의 두 점 사이를 표면을 따라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3차원이 허용된다면 두 점을 직선으로 잇는, 즉 사과 속으로 파 들어가는 벌레구멍이라는 지름길이 생긴다. 이와 마찬가지로 별과 별 사이, 또는 우리 은하와 다른 은하 사이에도 이러한 지름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지름길이 그렇듯이 지름길이 갈라지는 곳에서는 길이 급하게 꺾어지는 법이다. 즉 웜홀은 시공간이 급하게 구부러지는 곳에서 시작된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시공간의 구부러짐은 중력에 의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여기서는 강한 중력이 작용할 것으로 짐작한다. 이것이 블랙홀과 웜홀이 서로 관련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화이트홀은 수학적으로는 블랙홀을 시간적으로 뒤집은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중력방정식은 뉴턴의 중력방정식이나 양자론의 방정식과 같이 시간을 뒤집어도 그대로 성립한다. 화이트홀은 블랙홀과는 반대로 물체를 일방적으로 뱉어내는 구멍이므로 일반상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물리학자들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이해하면 웜홀을 이용하여 타임머신이 가능하다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웜홀은 기관(throat) 모양의 관으로 연결된 두 개의 입구를 갖고 있으며, 여행자는 웜홀의 한쪽 입구로 빨려 들어가 기관을 따라 내려가서는 아주 짧은 순간에 다른 쪽 입구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설명된다. 그것은 웜홀의 입구와 출구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 서로 다르다면 그 사이에 시간 터널이 연결되어 있어 과거 또는 미래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웜홀은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간을 굽힐 수 있다면 실제거리가 얼마이든 웜홀의 길이는 일정하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38만 4,000킬로미터인데 1미터의 웜홀이 생기면 한 발짝만 옮겨도 달에 갈 수 있다. 순간적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은 우주를 가로지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바로 공상과학자들이 원하는 원리이며 SF 영화들은 대부분 이 이론을 채택한다.

물론 SF영화 감독에게는 문제가 없지만 킵 손 교수가 제안한 웜홀에는 큰 문제점이 있다. 웜홀을 열린 상태로 유지하려면 웜홀의 벽을 열린 상태로 지탱할 수 있는 일종의 특이한 물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물질은 보통 물질과는 달리 음의 에너지밀도(질량이 0보다 작은)와 음의 중력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바깥쪽으로 밀어내는 힘이 작용하여 웜홀이 닫히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여행자가 웜홀 속을 통과할 때 짜부라지지 않는다.

음의 에너지란 에너지가 0보다 작은 것을 의미하므로 과거의 학자들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근래의 학자들은 네덜란드의 헨드릭 카시미르(Hendrik Casimir)가 음에너지의 존재를 증명했다고 믿는다.

카시미르는 1948년 진공 속에서 두 금속판을 서로 마주 보게 놓아두면 두 금속판 사이에는 중력과는 상관 없이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매우 기이한 주장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두 금속판이 10억 분의 1미터 정도 떨어져 있으면 실제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 이 힘을 ‘카시미르 힘’이라고 부르는데 금속판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그 힘은 더 커진다.

물론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공기를 완전히 뽑아낸 진공 상태 속의 텅 빈 공간이 실은 완전히 텅 빈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가상’ 입자들이 들어있다.
가상 입자의 존재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 원리에 따르면 어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결과 양자 차원에서는 설사 텅 빈 공간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서 수많은 입자들이 생성과 소멸을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 입자들은 어떤 정교한 관측 도구를 사용해도 눈에 띄지 않게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에 가상 입자라고 부른다.

입자는 파동으로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입자마다 각자 다른 파장을 가진다. 그 결과 모든 가상 입자가 두 금속판 사이의 좁은 틈 안에 빽빽하게 들어 있을 수 없다. 파장이 두 금속판 사이의 거리보다 긴 입자는 그 속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 결과 금속판 바깥쪽에 있는 입자와 그 안쪽에 있는 입자의 수에 불균형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만약 진공 속의 에너지가 0이라면 두 금속판 사이의 에너지는 금속판 주위의 에너지보다 더 낮게 되며 0보다 작을 수밖에 없다. 이 음의 에너지가 두 금속판을 움직이게 하는데 카시미르 박사의 실험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이것이라는 설명이다.

여하튼 음의 에너지는 음의 중력을 만들어내고 웜홀을 열린 상태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질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SF에서 자주 보이는 타임머신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아주 큰 규모의 음 에너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계산에 따르면 놀랄 만한 수준이다.

지름 1미터 정도의 웜홀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음에너지는 행성 하나의 에너지에 해당할 만큼 크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행성은 보통 행성이 아니라 태양계에서 가장 큰 목성을 말한다고 넬슨은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