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기다리는 주전자와 향토 음식

kongbak 2007. 12. 22. 11:34
 

기다리는 주전자와 향토 음식


미국 속담에 ‘쳐다보고 있는 주전자는 생전 끓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조급하게 서두르고 초조하게 생각하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이국(異國)의 이민 생활이야말로, 조급하고 초조한 생활의 연속이다. 이곳 조국에 와서 생각해 보니 더욱 그렇다.
조국은 우리들 삶의 원천이다. 모든 인간은 고향의 정취와 정기를 받고 살아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몸이 아플 때 향토 음식을 먹게 되면 건강을 되찾곤 하는 현상도 이것과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사람의 내면에 흐르는 정기에는 향토의 맥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또 꼭 신체적으로 아프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수시로 자기 고향의 향토 음식을 찾게 마련이다. 그 음식의 희소성이나 가격, 영양가를 떠나 자신의 정서와 정기가 그것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향토 음식은 신김치를 큼직하게 죽죽 찢어 넣은 김치찌개이다. 아무리 몸이 아프고 입맛이 없다가도 그것만 보면 침이 넘어가면서 밥 두 그릇을 거뜬히 비우곤 한다. 다른 매운 것을 먹게 도면 꼭 탈이 나는데 그것만은 그렇지 않다.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다. 그래서 김치찌개는 나의 단방(單方) 비상약이기도 한다.
외국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고국의 땅을 밟게 되면 그 흙에서 나오는 정기가 자신의 지치고 피로했던 심신을 활기있게 해준다고 입을 모은다.
아무리 공해에 찌들고 복잡해진 땅이지만 조국의 땅에는 우리의 정기가 맥맥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조국을 찾았을 때 나의 기(氣)를 충전하곤 한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는 일정들이지만 조국 땅에서 지낸 며칠은 이국 땅에서 몇 년을 활기있게 보낼 수 있는 정기를 심어 주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처럼 자주 고국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그런 행운을 주는 인연, 나에게 그런 기회를 주는 인연, 그 인연들의 숨겨진 뜻을 나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좋은 얘기들을 교포들에게 들려줘 주위와 후대에 보답하라는 준엄한 인연의 역사라는 것을 …….
사람이 자신이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더욱이 그것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 큰 다행이 아닐까?
물론 아무리 좋아하는 향토 음식일지라도 삼시 세끼 줄창 먹을 수 없는 것처럼 때론 다소 싫증도 나고 짜증도 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 짜증과 권태를 나름의 여유로 극복하는 지혜를 우리는 지녀야 한다.
우리들 모두는 지혜와 여유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옆에는 항상 조국과 고향이 있다.
정진하라.
그러나 조급하게 서두르지는 말자.
인생은 앞으로도 무척 많이 남아 있다. 팔순을 넘긴 노인이라 할지라도, 이팔청춘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하루 스물네 시간, 일년 삼백예순 날의 길이가 사람마다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루가 여삼추인 사람이 있고 십 년이 한나절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답답하고 짜증이 날 때면 고향을 생각하라.
방과 후 둑방길을 무슨 까닭이었는지 혼자 쓸쓸히 걸어 귀가할 때 가을 들판을 날아다니던 고추잠자리, 그 고추잠자리를 조금은 처량한 마음으로 쳐다보던 그 시절, 내가 이만큼 성장해 있으리라는 것을 그때 상상이나 했겠는가.
두엄 내음 아련히 풍기는 어스름 저녁 무렵에 동구 안 동무네 집 울안에서 피어나는 구수한 밥 냄새, 우린 그때 우리가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곤 했다.
우리에겐 고향이 있다.
물론 고향의 두엄 냄새, 밥 짓는 냄새는 그 시절의 그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 가슴속에 남아 있음으로 해서 영원히 같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다려 주는 곳이 있는 사람,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는 사람, 그 사람은 외롭지 않다. 그 사람은 결코 떨어져 있는 사람이 아니다.
힘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