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고구려의 민족적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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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지린성 지안시 고구려 다섯투구무덤 4호묘 벽화에 등장하는 해신(오른쪽)과 월신. 동아일보 자료 사진 |
![]() 중국에선 천자(天子)만 독점했던 ‘하늘의 후손’이라는 제왕관과 중화질서와 차별되는 독자적 천하관을 보여 주는 고구려의 역사 기록이 적힌 동양 최대의 비석 광개토대왕비. 동아일보 자료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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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릉은 광개토대왕비의 근거리에 폐총이 되어 있었는데, 관을 넣는 왕릉 정상은 꺼져 내려앉아 허리를 굽혀 간신히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광개토대왕릉에도 후미 우단에 별도로 당시의 고인돌이 남아 있어서, 광개토대왕이 고조선 왕족 후예임을 밝혀 주고 있었다. 고인돌이 고조선의 독특한 무덤 양식임은 모두 알고 있는 바이다.
그러면 고구려 백성은 어느 계열인가? 민족 판별의 과학적 지표는 첫째 언어이다. 고구려 언어가 중국어 계열인가 조선어 계열인가의 판별로 이를 알 수 있다.
‘양서(梁書)’ 백제전에서는 “백제는 언어와 복장이 대략 고구려와 같다”고 했다. 백제말은 현재의 경기도·충청도·전라도 말의 고대어이다. 고구려말도 이와 같은 것이다. 고구려말은 현대 한국어의 고대어 중 하나이다.
○ 백제와 언어 같은 고구려가 中의 지방 정권이라니
백제말이 중국말과 같지 않고 고구려말과 같다고 기록한 것은 백제말과 고구려말이 다함께 고대 한국말이며, 고구려의 민족적 계보는 백제와 마찬가지로 한국민족(조선민족) 고대국가의 하나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면 고구려가 독립국가가 아니고 중국의 한 군현이거나 지방정권이었을까? 고구려는 강성하여 중국 고대국가들도 두려워했던 당당한 독립국가였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고구려가 수나라에 신복(臣服)하지 않는다고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다가 을지문덕에게 완패하여 수나라 병사 수십만이 죽고 1만여 명이 고구려에 포로로 잡혔다. 수나라는 이 패전이 주원인이 되어 멸망했다.
뒤를 이은 당(唐)의 고조(高祖)는 서기 622년 고구려 영류왕에게 공식 편지를 보내어 포로송환을 요청했다. 이때 당나라는 고구려를 자기의 지방정권이라고 간주했을까? 그와 반대다. ‘구당서(舊唐書)’에 수록되어 있는 당 고조의 공문편지에는 “이제 두 나라(고구려와 당)가 화친을 통하게 되었으니(今二國通和)”라고 시작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때 당 고조가 고구려를 당나라의 일개 지방정권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당과 고구려가 대등한 두 개 독립국가로서 화친을 하게 되었음을 공문으로 기록하고, 이것을 ‘구당서’에 수록하고 있는 것이다.
○ 코리아 명칭의 기원은 고구려… 한국민족 증거
한(漢)의 고조(高祖)는 흉노가 막강해지자 흉노에 대해 한을 ‘흉노의 신하’라고 스스로 칭신(稱臣)하고 공주 등을 바치며 굴욕외교를 했는데, 그렇다고 한나라를 흉노의 지방정권이라거나 한나라를 독립국가가 아니라고 볼 수 없고, 또 그렇게 기록한 중국 고대역사가도 없다. 그런데 중국 역사가들은 중국 왕조들과 각종 친선관계만 맺으면 ‘책봉조공(冊封朝貢)’이니 무어니 하면서 다른 나라를 복속관계로 꾸며서 기록했다. 강성했던 고구려는 중국계열 왕조들이 이런 외교양식을 강요할 경우 대부분 무시했다.
한국은 세계 속 명칭이 코리아(Corea, Korea)이다. 코리아의 명칭은 고구려에서 나왔다. 고구려를 중국에서는 당시에 대부분 고려(高麗)라고 불렀다. ‘이십오사’ 같은 정사에도 고구려를 3분의 2는 ‘고려’라고 쓰고 3분의 1만 ‘고구려’라고 기록했다. 고려의 현재 중국어 발음은 ‘카오리’지만 고대 발음은 ‘코리(Kori, Kor~ee)’이다.
돌궐(투르크)민족이 중국 북방을 지배하다가, 서방으로 이동하여 아나톨리아 반도와 발칸 반도 등 유럽에 진출했는데, 투르크족에 의해 서방세계에 육로로 ‘코리아’가 먼저 알려졌다.
8세기 전반기에 세워진 오르혼 돌궐비문에 ‘맥(밝)코리’라는 나라가 나온다. 이것은 ‘맥족(밝달족) 고구려’의 준말로서, 투르크족은 서방으로 이동하면서 고구려를 ‘코리’로 서쪽세계에 알렸다.
이어 10세기 초에 왕건이 고구려를 계승하여 수도를 송악(개성)으로 정하고 후고구려(後高句麗)를 건국했다가, 이를 줄여 고려(高麗)로 바꾸었다. 고려는 해상무역을 발전시켜 남송을 거쳐 동남아와 아랍세계와 무역을 했는데, 이때 ‘코리아’가 해상무역로를 통하여 다시 서방세계에 알려졌다.
그러므로 ‘코리아’의 명칭은 고구려나 고려가 ‘코리아’로 변천된 것이며, 코리아의 명칭 기원은 ‘고구려’이다.
민족적 계보와 언어·문화는 물론이요, 국가와 민족 명칭에서도 고구려는 한국민족의 고대국가임이 불을 보듯 명백한 것이다.
한국 국민과 정부는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동북공정의 주장이 ‘코리아’의 기원까지 빼앗으려는 ‘역사침략’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장래 가공할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역사침략에 당당하고 강력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중국 당국은 종래 마오쩌둥(毛澤東)이나 저우언라이(周恩來) 시기에도 없었던 이 무지몽매한 동북공정 및 일부 중국 역사학자의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침략사관 망상과 ‘역사침략’을 반드시 폐기해야 할 것이다.
신용하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신용하 교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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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졸업 △1964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하버드대 역사학 및 극동어 박사과정 수료 △1975년 서울대 문학박사(사회학) △1975∼2003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사회사, 사회사상사) △현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한성대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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