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시인 김지하(66)씨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쓴 기행 산문을 모아 두툼한 책 한 권을 펴냈다. <김지하의 예감>(이룸·1만7900원)이 그것으로, 첫 해외 여행지였던 홍콩을 비롯해 일본과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 유럽과 미국 등이 망라되었다.
책의 부제는 ‘새로운 문명을 찾아 떠나는 세계문화기행’이라 되어 있는데, 북반구의 대부분에 걸치는 여행길에서 시인이 마주치는 것은 오히려 민족 고유의 가치와 정신이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서 만난 카자흐 민속대학 민속학연구소장과의 대화는 상징적이다. 카자흐에서 신의 이름이 무엇이냐는 시인의 질문에 소장은 ‘한’이라고 답하고 그 뜻은 ‘영원한 푸른 하늘’이라고 설명한다. ‘한’은 한민족의 한이요 몽골의 제왕을 가리키는 ‘칸’이기도 하다. 요컨대, 김지하 시인이 해외 여행길에서 확인하는 것은 겨레의 자취인 셈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작은 반도 안에서 동서양 문명의 중요한 것들이 창조적으로 융합하고 그것이 다시 세계로 퍼져 나갈 것이라는 예감을 여행길에서 얻었습니다. 동방 르네상스입니다. 물론 과학적인 확증 같은 건 없지요. 다만 시인의 눈으로 돌아다니며 보니 그럴 것 같더라는 식의, 반은 희망사항이기도 하지요.”
14일 낮 자신이 관여하는 서울 창덕궁 옆 문화 카페 ‘싸롱 마고’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한반도에서 비롯되는 문명의 새로운 단계를 힘주어 역설했다. “동방 르네상스의 핵심은 교환과 호혜, 그리고 생태적 공공성입니다. 시장 중심의 교환행위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거기에 호혜와 상생이 결합해서 무언가 새로운 문명이 태동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싹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고대의 네트워크에서 찾을 수 있어요.”
시인은 그런 점에서 우리 청년들이 유럽으로만 몰려갈 것이 아니라 중앙아시아 쪽으로도 적극적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알마티에는 흥부 이야기를 비롯해 우리 민담과 민요의 원형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경계인 캄차카에는 7천개의 신화가 있다더군요. 우리는 그걸 목표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민담과 신화를 콘텐츠로 삼아 ‘깊은 한류’를 만들어서 할리우드에 맞서야 합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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