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流, 한류를 삼키다 | |
물론 그것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었다. 1990년대 10년간 대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서 일본을 추격해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을 내놓기 시작했다. 일본의 제조업은 완전히 끝난 듯 보였다. 일본 제품에 대한 일종의 맹신 현상까지 보였던 일부 한국 소비자들조차 일본 제품을 외면했다. 말 그대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다. 그리고 2000년대. 일본이 ‘메이드 인 재팬’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일본 경제는 2002년 1월을 전환점으로 다시 기지개를 켰다. 1990년대 후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던 일본은 지난 2월까지 어느새 61개월째 경기 확장을 이어왔다. 이제 장기 불황의 터널을 뚫고 나온 일본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베트남 태국 등 소위 신흥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현지 생산 거점을 구축하고 토착화된 마케팅을 펼치면서 한국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리고 2007년, 이제 한국 기업은 걱정거리가 또 하나 늘었다. 일본의 성장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엔화 환율 하락이 이어지면서 한국 시장 내에서도 일본 제품의 인기가 날로 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제품군의 범위도 전방위적이다. 공산품뿐만 아니라 문화 산업에서도 그 파고는 높기만하다. 한류(韓流)가 아닌 일류(日流)가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만화를 비롯해 서구사회에서 ‘멋있는 일본(Japan Cool)’으로 인정받고 있는 일본 문화는 특히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높은 지지도를 얻고 있다. 물론 일본 문화의 유행은 이미 오래된 현상으로, 최근 그 영향력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뿐이라는 분석도 있다. 강명석 문화평론가는 “그동안 일본 문화는 음성적으로 즐기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제 콘텐츠가 대중문화 산업에서 하나의 뚜렷한 시장으로 자리 잡으면서 정확한 실체를 드러낸 것”이라고 최근 일본 문화 상품의 인기를 분석했다. 일부에서는 소위 일류가 100년의 역사를 지닌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일본 소설 한 가지만 보더라도 과열 논란 속에서도 해를 거듭하며 문화적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상태다. <출판연감>에 따르면 1997년 143종에 불과했던 일본 소설은 2006년에는 580권이 출간됐다. 대중문화의 경우 미디어 채널의 증가와 더불어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영상물 제작이 붐을 이루면서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따라서 가까이 있는 일본 콘텐츠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 원작으로 영상물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아예 일본 원작을 즐기는 일드족(일본 드라마 마니아)도 등장했다. 여기에 스포츠까지 일류 열기에 가세했다. K-1, 프라이드 등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스포츠 비즈니스는 최홍만, 이태현 등 한국 프로 스포츠 선수 출신을 하나둘씩 영입해 한국 시청자를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젊은 소비자들이 이 같은 일본 문화 상품에 관심을 갖는 것은 기존에 일부 브랜드를 ‘신봉’하던 것과는 다른 의미다. 이를 두고 고정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로크인(Lock-in) 현상’이라는 말로 풀이했다. 한류 때문에 동남아시아 소비자들이 한국 제품에 관심을 갖듯 일본 문화 상품이 인기를 얻고 일본 관광객이 늘어나면 청소년들이 일본 문화나 제품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다른 제품에 눈을 돌리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로크인(Lock-in) 현상은 이처럼 어느 한 제품이나 상권에 익숙해져 입맛을 들이면 다른 제품으로 바꾸기 어려워지는 것을 말한다. 특히 정보통신기기와 관련해 강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재 일본식 소비 취향이 소수의 사람에 한정된 이야기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최근 일본으로 출국하는 관광객 수의 변화만 보더라도 이미 일류는 우려할 수준에 이르렀다는 결론 도출이 가능하다. 상품·문화 등 전방위서 한국 공략 일본 상품의 인기는 단순한 가격 하락, 또는 일부 열성팬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결국 글로벌 마켓의 상품 경쟁력 문제로 귀결된다. 기술 진보로 전 세계적인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비록 한국 시장 내라고 하더라도 멀리 태평양 건너 떨어진 국가의 제품까지도 경쟁 상대로 염두에 둬야 한다. 1990년대부터 계속된 통신 기술의 발달은 과거와 달리 승리의 영광을 소수에게 집중하고 있다. 이제 정보 습득의 경로와 유통망이 온·오프라인으로 다양해지면서 승자 독식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동네 구멍가게가 어려워진 이유를 반드시 대형 할인마트에서만 찾을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전 세계 어디에서 판매되는 상품이든 가격 비교 과정까지 거쳐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일류는 일시적인 트렌드로 해석하기보다 경쟁력에 관한 경고로 봐야 한다. 노은정 신세계유통산업연구소 부장은 “유통 채널이 온·오프라인으로 완전히 오픈되면서 다국적 상품을 가장 싼 채널을 통해 사는 게 일반화된 쇼핑 노마드족까지 등장했다”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유통 업체들도 점차 글로벌 소싱을 늘려가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유통망이 다양해지면서 소비자가 언제든 조금이라도 경쟁력 있는 제품을 노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노 부장은 또 “따라서 제조 업체든 유통 업체든 차별화를 위해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자유무역협정(FTA) 시대를 맞아 다국적 제품이 관세 없이 한국 시장에 들어올 경우 앞으로 그만큼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
글 김소연 한경비즈니스 기자 selfzone@kbizweek.com | |
입력일시 : 2007년 3월 7일 9시 39분 39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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