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스크랩] 새해에는 좋은 예언만 하라

kongbak 2007. 1. 25. 01:04
새해에는 좋은 예언만 하라
시편 21: 1~7

 

김기홍 kimkh@amennews.com

 


어느 추운 날이다. 일하느라 잘 모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들어와 말한다. “어이구 추워. 이거 완전 냉장고네. 이러고 어떻게 일해!” 즉시로 모두가 추위에 사로잡힌다. “이거 점심도 못 먹고 왜 이렇게 지겹지?” 그러면 허기지고 짜증이 나서 일은 마비되고 만다.

똑 같은 장면에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 “멋있다. 일 열심히들 하는구나.” 칭찬 들으니 새 힘이 난다. “30분 동안 멋지게 마무리 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그러면 더 열심히 일을 한다. 30분 더 하면 점심을 먹으니까. 잘 된 사람들은 이렇게 긍정적인 말을 한다.

말은 힘을 가졌다

말의 힘이 얼마나 큰가. 일단 정의 내리면 모든 의식구조가 그리로 정렬한다. 과학적 연구의 결과이다. 아무리 상황이 나쁘게 느껴져도 나쁜 말로 정의하지 말라. “망했다.” “다 끝났다.” “나쁜 놈이다.” “억울하다.” “약 오른다.” “지겹다.” 감정이 바뀌어도 말은 남는다.

주위 사람들을 떠올려보라. 어떤 상황이나 다른 사람의 하는 일을 늘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어떻게 저렇게 남들이 못 보는 걸 잡아내고 표현할 수 있을까 놀랍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잘 되고 있는지 살펴보라. 절대로 안 그렇다. 나쁜 말이 나쁜 삶을 만든다.

그러다보면 그런 사람들끼리 모인다. 문제 지적하고 불평하는 모임이 된다. 술 마시며 사회 비판한다. 요즘 젊은이들 비판한다. 대통령 비판한다. 교회 비판한다. 그러다보면 나쁜 방향으로 상승효과가 난다. 삶은 불행하게 느껴진다. 집에 와서 신경질 부린다. 되는 게 없다.

부자를 욕하고 비난해 보라. 그러면 내 잠재의식은 부자가 나쁜 것이라고 각인한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부자가 안 되게 한다. 혹시 돈이 생겨도 불안하고 곧 없어진다. 잘 된 사람을 비꼬고 욕해보라. 자신은 절대로 그렇게 잘 될 수가 없다.

반대로 부자를 칭찬하고 잘된 사람을 존경해 보라. 그러면 나의 전체가 그리로 향해 강하게 움직여간다. 내가 칭찬하는 내용을 내 잠재의식이 그대로 되려고 노력한다.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칭찬하는 존재로 서서히 변해간다.

다윗은 절대로 부자나 권력자들을 욕하지 않았다. 왕이 자신을 죽이려고 10년이나 따라다녀도 한 마디 저주도 안 했다. “지겹다”거나 “나는 되는 게 없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정말 있느냐”하지 않았다. 욥도 모든 걸 다 잃은 뒤에도 하나님을 절대로 원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엄청난 손해나는 말들을 서슴없이 뱉어낸다. 좋은 세상도 나쁘게 말하고 자기 일도 습관적으로 나쁘게 말한다. “안 된다” 하고 “감기 왔다” 하고 “미치겠다” 한다. “열 받는다.” “짜증난다”. 일단 말하고 나면 더 화가 난다. 그러면 더 나쁘게 말한다.

좋은 말을 연습하라

음식 먹을 때 우리는 잘 살펴본다. 상하지 않았나, 살찌는 거 아닌가. 컵에 하루살이가 빠져도 안 마신다.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 영혼에 손해를 주는 말하지 않는지. 상황과 사람들과 내 하는 일에 대해 나쁘게 정의하지 않는지.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0). 우리가 하는 말이 씨가 되어서 언제인가는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말은 그러니까 자신의 미래를 예언하는 셈이다. 악한 말은 악한 미래를 준다. 좋은 말은 좋은 미래를 준다.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 자신의 말이 자신을 만든다.

누구나 원하면 좋은 말만 할 수 있는가? 보통 사람들은 흉내만 낼뿐 좋은 일을 예언할 수 없다. 그럴 자격도 능력도 없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모른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왕으로 만드셨다.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주의 구원을 인하여 크게 즐거워 하리이다.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믿으면 새사람이 되고 신분이 바뀐다.

그러나 자기 신분에 대한 믿음이 없다. 그래서 늘 하던 식으로 한다. 아프면 말한다. “내 나이에 관절염 걸리는 건 당연해.” “나이는 못 속여.” 사업이 안 되면 말한다. “요즘 어디 되는 게 있나요?” “제가 하는 일이 항상 그렇지요.” 현실인 것 같지만 예언이다.

이렇게 해 보라. “내 몸의 모든 기관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로 완벽하게 돌아간다. 예수께서 죄와 병을 다 가져가셨다. 나는 바이러스나 알레르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내 몸은 하나님이 들어와 계시는 성전이다. 내게는 좋은 것만 일어난다.” 광신자라고 하겠는가?

믿음으로 예언하라

하나님 믿는 사람은 현실보다 위에 있는 진리를 따라야 한다. 좀 어색해 보여도 마음을 가다듬고 말해 보라. 이미 몸이 망가졌다 해도 스스로 말하라. “하나님은 내 몸을 새롭게 하신다. 뇌나 신경의 상한 부분은 하나님이 어루만져 고치신다. 나는 건강해지고 있다.”

이제 좋은 예언과 나쁜 예언의 차이가 무엇인가? 나쁜 예언은 옛사람의 습관에서 나오는 불신앙의 고백이다. 좋은 예언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들을 근거로 선언하는 믿음의 말이다. 믿음의 말은 능력이 있다. 그 증거는 얼마든지 댈 수 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말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것이 바로 예언이다. 예수를 의지하고 그의 말씀에 조율해서 말하라. 반드시 이루어진다. 당장 안 되더라도 반드시 된다.

지금 내게 믿음이 있나 없나를 생각지 말라. 단지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성경에 뭐라고 하셨는지 확인하라. 그 내용을 의지하고 말하라. 믿음은 내가 확신하는지 않는지가 기준이 아니다. 확신은 바뀐다. 내 믿음은 좀 희미해도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고 말하면 된다.

그러면 그 말이 믿음을 준다. 믿음은 다시 믿음의 말을 하게 한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에게 “할 수 없다”는 말을 주지 않으셨다. “힘들다.” “버겁다.” “자신 없다.” “죽겠다.” 신자의 말이 아니다. 악한 예언이 된다. 점점 더 그렇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당신에게 하늘을 풀고 맬 권세를 주셨다. 믿고 이제부터라도 연습하라. “주의 구원으로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을 입혀주셨나이다. 저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다윗의 예언이요 그대로 되었다.

우리라고 못할 게 무엇인가? 보통 사람은 상상 못할 것을 구하라. 자신의 말을 잘 살펴서 조심스럽게 말하라. 칭찬하고 축복하라. 내 자신도 그렇게 된다. 싫은 것은 말고 원하는 것만 말하라. 새로운 일을 말하려고 노력하라. 자신을 위해 좋은 예언을 유지하라.

 

출처 : 새해에는 좋은 예언만 하라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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