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다 보면 마치 영사기를 돌리는 듯한 탁월한 기억력에 탄복의 소리가 절로 나온다. 묵은 기억의 더미를 파헤쳐 1930년대 개성에서의 꿈 같은 어린 시절부터 1950년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20대까지를 마치 영화처럼 그렸다.
이 소설가에게서 기억을 삭제한다면 삶에서 아무 것도 남는 게 없을 것이다. 무엇인가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배우는 게 바로 인생이다. 그 기억이 추억과 감정 그리고 인간성을 만들어 낸다.
컴퓨터는 반도체에 전자로 정보를 저장하지만 인간의 뇌는 뇌세포의 네트워크로 기억을 저장한다. 뇌세포는 무려 1천억 개나 되고 하나의 세포는 수만 개의 다른 뇌세포와 각각 연결돼 있다. 뇌세포는 어른이 되어도 탄생할 때 우리가 갖고 태어나는 것 그대로이지만 우리가 무엇인가를 기억할 수 있는 이유는 뇌세포 사이에 새로운 연결망이 끊임없이 생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평소 A라는 뇌세포가 B라는 뇌세포와 연결돼 있다. 같은 것을 복습하면 이 연결은 강화된다. 새로운 것을 배우면 A 뇌세포가 흥분하면서 새 가지가 뻗어 나와 C라는 뇌세포와 연결된다. 이 새로운 연결망이 바로 기억인 것이다.
인간이 기계와 다른 점은 기억이 곧 학습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학습해 더 고차원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는 네트워크로 기억을 저장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이는 인간의 뇌를 닮은 신경망 칩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컴퓨터용 반도체 칩은 공장에서 출고될 때 이미 계산 규칙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신경망 칩은 학습을 통해 계산 규칙을 스스로 배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경망 칩은 음성 인식, 언어 처리, 로봇 제어, 패턴 인식과 같은 인공지능 분야에서 주로 쓰인다.
컴퓨터와 우리의 뇌가 다른 점은 컴퓨터의 경우 사람이 ‘delete’ 키를 눌러야 정보가 지워지지만 인간의 뇌는 스스로 판단해 삭제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뇌가 형편없어 보이지만 자동 삭제 기능 덕택에 인간의 뇌는 저장 용량 부족에 시달리지 않는다.
기억이 유전자의 장난이기 때문에 학습과 유전자 조작을 통해 기억도 강화할 수 있다. 기억을 관장하는 크렙 단백질을 잘 만들도록 유전자를 조작하면 쥐와 초파리는 더 적은 자극으로도 기억을 잘 한다. 하나를 기억시키는 데 보통 10번을 연습해야 했던 초파리가 유전자를 조작하자 한 번에 재빠르게 기억을 한 실험 결과도 있다.
‘기억 단백질’ 즉 크렙 단백질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시냅스의 활동을 활발히 하면, 다시 말해 공부를 할수록 사람이 영리해진다는 것이 분자 수준에서 증명됐다. 반대로 유전적으로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신경세포에 자극을 주지 않으면 그 기능이 점점 쇠퇴해 버리게 된다.
인간의 기억력과 지능은 선천적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도 개발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자각과 행동이 유전자의 활성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유전자가 인간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자유롭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기억력도 강화할 수 있지 않을까? 노인이 될수록 또한 치매 등 뇌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는 기억 상실이 매우 심각하다. 그래서 전 세계 유명 제약회사와 벤처 기업은 크렙 단백질의 기억 원리를 이용해 ‘기억력 촉진제’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적어도 5∼10년 안에 사람의 기억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신약을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재 개발 중인 대부분의 치료약은 뇌세포가 파괴된 알츠하이머 환자를 위한 것이지만 언젠가는 학업 성적을 올리는 이른바 ‘스마트 약’으로 시판될 가능성도 있다. 이제 기억도 약물로 조절할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腦力'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두뇌] 뇌 발달과 학습능력 (0) | 2007.01.12 |
---|---|
[스크랩] 공부를 잘하기 위한 기억법 (0) | 2007.01.10 |
[스크랩] 건망증과 기억력 좋아지는 손가락 운동 (0) | 2007.01.09 |
[스크랩] 집중력향상고전음악 (0) | 2007.01.09 |
[스크랩] 기억력을 높여주는 음악, 머리가 좋아지는 음악, 자신감을 높여주는 음악, 편안한 휴식을 위한 음악 목록 (0) | 2007.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