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바흐

핵전략 [核戰略, nuclear strategy]

kongbak 2006. 10. 19. 17:27
핵전략 [核戰略, nuclear strategy]

핵전쟁 및 대규모의 재래형 전쟁을 억지하며, 만약 억지가 실패할 경우에는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핵전력을 운용하는 방책.

원래 핵전력의 유용성은 전쟁(게릴라전과 같은 소규모전 제외)을 억지할 능력이 있다는 데 있으며, 현재의 핵전략 또한 전쟁의 억지를 주체로 하여 구상되고 있다.


1. 핵전략의 진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기술의 진보에 의한 핵전력의 질적 향상과 서로 핵우위를 겨냥하는 양적 정비에 수반하여 미국·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핵전략은 수차에 걸친 변화를 보이면서 진전되어 왔다.

1950년대 초기까지는 미국의 핵독점시대로, 예방전쟁론 등 일부의 전략론이 나왔을 뿐, 미·소 다같이 명확한 핵전략을 내놓지 않았다. 그 후 1960년대 초기까지에는 미·소 양국에서 수소폭탄·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전략용 핵무기가 실용화되고 또 전술용 핵무기의 장비화가 진전됨에 따라 미국의 핵우위시대에서 미·소 상호억제시대에로 이행하여 핵전략도 수정을 거치게 되었다. 즉, 1954년 미국은 대량보복전략을 채택하여, ‘공산 제국의 어떤 침략에도 대량의 핵으로 보복한다’고 하였으며 이후 이 전략은 미국의 핵억지전략의 원형이 되었다. 그러나 소련의 핵전력장비로 미·소 상호억제시대로 접어들게 되자 대량보복전략에 대한 수정이 이루어져서 ‘국지침략에 대해서는 이를 배제하고 그 확대를 억제하기 위하여 전술용 핵무기를 사용한다’고 하여 단계적 억제를 기도하는 제한전쟁론이 채용되었으며 이것은 ‘new new look 전략’이라 불리었다. 즉, 단계적 저지전략이다.

이어 미·소 핵균형의 진전과 상호억제의 안정화에 수반하여 1961년 미국은 유연반응전략(柔軟反應戰略), 즉 ‘핵보복력 및 제한핵전쟁전력 외에 재래형 전력을 충실화하여 어떠한 단계의 전쟁에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준비함으로써 전면전쟁뿐만 아니라 제한전쟁에 대해서도 억제·대처한다’는 기본구상을 채용하였다. 이 기본구상에는 변화가 없으나, 핵전력의 가일층의 확충·정비에 따라 핵전략은 또다른 변화를 보이면서 진전되었다.


2. 최근의 핵전략

미국은 1963년 대병력전략(對兵力戰略)을 채용하였다. 이는 대도시전략(對都市戰略)에 비하여 공격목표를 군사목표에 집중하기 때문에 도시 및 일반시민의 피해를 서로 감소시킬 수 있다. 그러나 선제공격 중시의 경향이 있으며, 또 소련 핵전력의 증대에 따라 핵군비를 촉진(목표수의 증가에 따라 최대억제전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시키고, 또는 소련 핵전력의 비취약화로 그 격파가 곤란해지는 등 몇몇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1964년에는 피해국한전략(被害局限戰略)이 채용되었는데, 이 전략은, ① 소련의 핵전력을 발사되기 전에 선제공격을 가하여 파괴하기 위해 핵전력을 증강하여 미국의 공격 목표를 소련의 핵전략에 두는 것과, ② 소련의 핵미사일이나 폭격기의 공격에 대비 탄도요격미사일(ABM)·요격기·방공미사일 등을 강화하는 한편 일반시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방공호·대피소 등을 설치한다는 등이 그 골자이다. 이어 미국은 1965년 ‘확실파괴전략(確實破壞戰略:assured destruction strategy)’을 채택하였는데, 이 전략은, 적으로부터 조직적이고도 대규모적인 핵공격을 받아도 잔존한 핵전력으로 적에게 괴멸적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보복능력을 가진다는 것으로, 이것은 1960년대 이후 미국 핵전략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이 전략은 1964년의 피해국한전략과는 표리일체를 이루는 것으로 앞의 것은 공격적 측면의, 뒤의 것은 방어적 측면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확실파괴전략은 일반시민의 대량살해의 위험성이 높은 비인도적인 전략일 뿐만 아니라, 만일 소련이 군사목표에 대하여 한정적 핵공격을 가함으로써 미국 일반시민의 피해가 한정될 경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소련의 대도시·공업지대에 핵공격을 가하여 대량보복을 감행할 수 있을까 하는 등의 의문과 비판을 받자 핵전략의 수정에 착수하였다.

1969년의 충분성전략(充分性戰略:sufficiency strategy)의 채택을 거쳐, 1980년 8월에는 전면핵전쟁이 발생하면 미·소가 다같이 군사목표, 정치중추, 공업·교통시설 등의 태반이 파괴되어 상호자살행위가 됨을 명백 하게 실증하는 전략으로서 상쇄전략(相殺戰略:countervailing strategy)이 J.E.카터 대통령에 의해서 채용되고, MX 미사일, 트라이던트 잠수함, 공중발사 순항 미사일(ALCM) 폭격기가 중심이 되는 1980년대 미국핵전략의 기본으로서 레이건 행정부에 인계되었다. 명중 정도의 비약적 향상, 공격목표 전환기술의 진보, 비취약성(非脆弱性)의 강화에 의하여 확실파괴전략에서 더 진화된 핵억제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