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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 정신의 최고 실천국... 피터 드러커의 한국에 대한 평가가 틀리지 않았었음을 믿고 싶습니다

kongbak 2006. 8. 30. 13:27
기업가 정신의 최고 실천국... 피터 드러커의 한국에 대한 평가가 틀리지 않았었음을 믿고 싶습니다
2006/08/21 오후 2:09 | 한국경제/세계경제

드러커 박사가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54년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의 고문으로 방한한 때였다.

피터 드러커 박사는 최근 발표한 저서 '실천하는 경영자'를 통해 기업가 정신의 최고 실천국은 의심할 바 없이 한국이라고 밝혔다.

그는 "40년 전에 한국은 산업이 전혀 없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식민지 통치를 한 일본이 아무것도 용납하지 않았으며 고등교육조차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교육받은 사람이 한국에는 없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남한은 초토화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은 상당히 많은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조선 등 몇몇 분야에서는 리더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피터 드러커의 '나의 이력서' 중에서 (청림출판사, 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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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11시50분. 아이를 재우고 한동안 책을 뒤적이다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광복절이었습니다. 1945년이니 60돌입니다.

피터 드러커의 '나의 이력서'. 이 책을 다시 읽다 그가 한국경제에 대해 평한 부분에서 눈이 멈췄습니다. "기업가 정신의 최고 실천국은 의심할 바 없이 한국이다..."

그의 말 대로, 40년 전에 한국에는 '산업'이 전혀 없었습니다. 1965년이면 41년 전인가요. 제가 태어났던 해입니다. 그리고 참혹했던 한국전쟁이 끝난지 겨우 12년이 지났던 해입니다. 일제 식민통치에 이어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남한은 초토화되어 있었습니다.
50년대, 60년대, 70년대... 그 고단했던 기억들을 많은 중장년층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지금 세계 11위의 경제국으로 성장했고, 조선,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등 몇몇 분야에서 세계 선두권을 달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대다수 국민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많은 후진국들과는 달리, 대다수 국민들이 굶주림의 공포에서 벗어났고 많은 이들이 휴대폰과 인터넷을 즐기며 자동차를 몰고 휴가를 떠납니다.

이런 세계사의 유례가 없는 성공은, 피터 드러커의 해석에 따르면 '기업가 정신의 실천' 덕분이었습니다. 이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때마침 만개한 국제무역 구조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60년, 아니 40년만에 '가장 가난한 국가'에서 '11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가 격찬했던 한국경제의 모습을 요즘은 찾기 힘들어 보입니다. 수치만 보아도 벌써 몇년째 경제는 잠재성장률을 밑돌고 있습니다. 세계경제의 평균성장률조차 하회하고 있습니다.

더 크고 근본적인 문제는 광복 60돌을 맞은 지금 우리가 '미래'와 '세계'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각이 자꾸 '과거'와 '폐쇄'로 향하고 있습니다. 진취적인 기업가 정신과는 거리가 너무도 멉니다.
중국경제같은 많은 거대한 태풍들이 곧 들이닥쳐 한국경제를 초토화시킬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모두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미래를 향해 매진해도 쉽지 않은 상황인데, 요즘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지난 60년의 우리를 송두리채 부정하며, 감성을 자극하는 그럴듯한 구호와 이데올로기 속에 '고립'과 '폐쇄'로 역사의 방향을 바꾸자는 목소리도 크게 들립니다.

곤히 자는 아이의 모습을 봅니다. 무더운 열대야에서도 천진스런 모습으로 잘도 잡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면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어야 할텐데...

그러기 위해선 여러가지가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나라와 경제, 기업을 이끌어 가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미래를 향해, 세계를 향해 올바른 방향으로 진취적으로 구성원들을 이끌어 가는 리더가 절실합니다. 물론 제대로 된 리더들을 선택하는 역할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60돌을 맞은 광복절 늦은 저녁. '기업가 정신의 최고 실천국'이라는 피터 드러커의 한국에 대한 평가가 틀리지 않았었음을 믿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