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상자

[스크랩] 채환의 기록(6) - 산조, 그 흩어진 사랑의 가락이여

kongbak 2006. 7. 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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散調, 그 흩어진 사랑의 가락이여

 

 

기러기 날다 지치면

오동나무 자주 빛 花香이 그리워

날개를 접지. 아예 눌러 붙지

열두 명주실 질기도록 꼬아

결에 맞게 팽팽히 당기면

퉁 하니 소리 하나 들리는데

무릎에 얹혀

척하니 손으로 뜯노라니

흩어졌다 모인 소리의 날개들

올곧은 가락은 넘쳤다 남기고

공명이 사라진 뒤

적요는 아찔한 꿈길을 걷게 한다.

천 년의 세월은 그렇게 걷히고

시간은 기억의 문으로 되돌아 가는데

헛개비는 팔랑대며

멋 옛날을 향해 윤회의 강을 건넌다.   

 

1.

 

가실왕의 짓이었지.

무엄하다며 소리를 내지른

권력의 힘은 지나가는 누렁이에게나

쓰라지.

심장을 도려내도 마음을 돌이킬 수 없는

인연의 끈이야 낸들 어찌 끊어내리.

가얏고를 뜯어 덥석 물어버린 사랑인데

어찌 감추겠는가.

너 나를 사랑한 이유로

나 너를 사랑한 죄로

내 여기 

옥에 갇힌 몸이나

바람결에 실어오는 너의 절규가

가슴을 찢는다.

손이 탄다 손이 탄다.

옥리야 옥리야

손이 탄다 손이 타

내 가얏고를 들여다오.

 

2.

 

성악이시여

손이 타오리까. 저를 뜯어 주세요

저는 가실의 딸도

가야의 공주도 아니외다.

오직

당신의 가얏고일뿐

신분은

입다 벗으면 그만인 옷이지요.

저는 당신의 소리가

되고 싶은 여자일 뿐입니다.

 

3

 

난 미치광이외다

소리에 미친 헛것이외다

내 죽어

육신이 가루 되어도

소리를 타고 싶은 내 열정은

구천을 떠돌 것이니

나를 버려주시오

공주 이시여 나를 잊어주시오

 

4.

 

그리하지요

그리할게요

악성이시여

기러기처럼 훨훨 날아오르듯

목숨을 앗아갈 이 땅에서

멀리 떠나가세요.

저는 죽어

당신의 가락이

되어 드리오리다

눈물의 현이 되오리다.

당신은 떠나가도

저는 남아 이 땅의 가얏고가 되리다.

 

헛것은 뒤돌아서 울었다.

樂聖 우륵은 소리에 미처

조국 가야와 자신을 사랑했던 공주를 버렸고

가실왕은 신라왕의 칼에 목이 달아나서

대가야는 역사 속으로 침몰했다.

오직

헛것만이 시공을

뛰어 너머 그 역사의 현장으로 달려가

가녀린 공주를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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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記)

 

이 글을 중간쯤 써내려 가다, 김훈의 ‘현의 노래’가 생각나서 그만 둘까 고민했다. 채환의 기록 시리즈는 한잎 소설의 형태라서, 소재가 신선해야 했다. 다만, 황병기 선생의 가야금 산조가 하도 듣기 좋아, 배경 글을 내친김에 끝까지 써보자는 고집을 가지게 되었다.

참고로, 우륵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성악 우륵은 대가야 사이기국(斯二技國)에서 480년경에 태어났다. 그는 젊어서 음악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예인 이었다. 510년, 가실왕의 명에 따라, 우륵은 가야금 12곡을 만들게 된다. 또한 우륵은 왕의 부탁으로 공주에게 가야금을 가르치게 된다. 가실왕의 딸인 공주는 우륵한테 가야금을 배우게 되나, 우륵을 사랑하고 된다. 왕은 이를 알아차리고, 미천한 신분의 우륵이 공주를 사랑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겨 그를 옥에 가둬버린다. 공주는 가야금소리에 미쳐있는 우륵의 천부적인 재능이 아깝기도 하거니와, 결국 자신 때문에 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기에 옥리를 매수하여 우륵의 탈출을 도와준다. (김훈의 소설에서, 우륵이 처음에 도망가고자 했던 곳이 대마도이고, 이 섬이 가야국 관할의 부속영토라는 내용 때문에, 요즘 네티즌 사이에 독도 영토 문제와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가지는 모양이다.)

우륵은 제자 니문과 함께 가야를 탈출하여 신라로 망명한다. 진흥왕은 우륵의 가야금 소리를 듣고 감동한 나머지 그의 재주를 아껴 탄금대에 거처를 마련해주고 신라인 3인이 수학하게 한다. 전설에 의하면, 우륵에게는 ‘화보’라는 여인이 따로 있었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 속의, 화보라는 여인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관심 밖이었다. 그녀는 우륵의 조강지처나 다름 없는 여인이다. 그들의 사랑이 어찌되던, 운명적으로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하게 된 공주의 슬픈 사연에 더 끌렸고 초점이 맞춰진다. 공주라는 신분을 이용해 사랑을 쟁취하려는 것이 아닌, 소리를 통해 스승을 사랑하게 된 한 여인의 가슴 아픈 사랑 때문이었으리라. 가야는 우륵이 신라로 망명 직후 진흥왕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가실왕이 신라왕의 칼에 목이 날아갔으니, 공주 또한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거나 비천한 신분으로 남은 생애를 살아야 했을 것이다.

가야금 소리에는 이런 비극적인 사랑의 테마가 일부 담겨있는 것이다. 이 소리를 듣다 보면 슬프지만 아름다운 가락이 귓가에 파고드는 기묘한 열락과 적요 속에 꿈을 꾸는 듯한 환희에 젖어 깊은 소리 바다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소리의 思惟이다. 만취한 뒤 달을 쳐다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

l       오동나무는 늦은 봄에 자줏빛 꽃을 피운다.

l       안족(雁足)은 기러기 발가락을 듯하며 가야금 12 현을 걸치는 데 쓰인다.

l       가야금의 현은 명주실로 꼬아 만들었다.

 


출처 : 채환의 기록(6) - 산조, 그 흩어진 사랑의 가락이여
글쓴이 : 꽃동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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