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잔인했던 검찰, '내곡동'엔 자상도 하지
[정연주의 증언 80] '배임죄'와 관련된 세 개의 풍경
이 세 가지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명박 정권과 그 권력의 바탕인 수구보수 세력이 지배하는 지금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특히 조중동, 새누리당 등과 함께 수구보수의 핵심에 있는 검찰 권력의 생얼굴이 너무나 생생하게 드러난다.
나의 '황당' 배임사건, 그리고 내곡동과 김재철
'배임죄'(背任罪)의 본디 말뜻은 '본인에게 맡겨진 임무를 위배한 죄'인데, 형법에 규정된 내용을 좀 쉽게 풀면 "사적 또는 공적으로 어떤 일을 위임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어기고, 자기에게 또는 제3자에게 이익을 취하게 하여 일을 맡긴 당자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입히는 행위"를 말한다(형법 제355조 2항).
이명박 정부 들어 진행된 검찰 수사 중 '법조계에서 가장 황당한 수사 사례'로 꼽히고 있는, 그래서 일부 로스쿨에서 구체적 사례연구 대상까지 된 나의 배임사건 경우 검찰은 참으로 신속하고, 집요하고, 혹독하고, 일방적이었다. 검찰은 고발이 들어오자마자 바로 수사에 착수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검찰청에 불러 조사하고, 일방적인 배임혐의 내용을 조중동에 흘려, 기소되기도 전에 나를 아주 파렴치한 중죄인으로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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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얼마나 집요하고 일방적이었는지, 다음 사례가 잘 보여준다. KBS와 국세청 사이에 세금분쟁이 있을 때 국세청 법무2과장을 지낸 고아무개씨는 나의 배임혐의와 관련하여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고 과장은 검찰 참고인 조사 때 '표현 하나' 때문에 4시간이나 시달렸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그 '표현 하나'는 바로 배임죄 구성의 핵심 중 하나였다. 즉, KBS가 세금소송(당시 KBS는 1심에서 7승 9패)에서 대법원까지 모두 승소할 경우 국세청으로부터 환급을 받게 되는데, 환급 후 국세청에서 세금 재부과가 불가능해야 배임죄가 성립되었다. 만약 국세청이 재부과를 한다면 배임은 애초 성립될 수도 없었다.
검찰은 고 과장으로부터 국세청의 재부과가 '불가능'하다는 답을 원했다. 그러나 고 과장은 "재부과가 기술상 어렵기야 하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답을 했다. '불가능'의 답을 원했던 검찰은 이 하나의 표현을 가지고 그를 4시간이나 심문했다고 고 과장은 법정에서 털어놓았다. 검찰은 그렇게 집요하고, 일방적이었다.
게다가 검찰 기소에 따르면 나의 배임행위로 이익을 본 주체는 국가(국세청)이고, 이로 인해 손해를 입게 된 것은 KBS라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세금을 안 내도 되는데 왜 세금을 많이 내고, 그걸 끝까지 재판을 해서 다 받아오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나에 대한 검찰 공소장의 맨 마지막 구절은 이러했다.
피의자는 공사(KBS 지칭)가 조세소송을 통해 환급받을 수 있는 금액인 2448억 원(환급가산 이자 포함)을 합리적 이유 없이 포기하여 실제 환급액과의 차액인 1892억 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국가에게 취득하게 하고, 동액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공사에게 가하였다.
그리고 법원의 조정에 따른 것을 배임으로 몰았으니, 법원이 배임의 공모자인 셈이었다. 이런 온갖 억지와 황당 논리로 점철된 나의 배심사건은 1심 판결에서 검찰의 기소 내용이 모두 배척당하는, 검찰의 일방적 KO패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도 검찰은 잇따라 항소, 상고를 하면서 3년 동안 나를 괴롭혔다. '사법고문'이었다.
그렇게도 혹독하고, 집요한 검찰이 이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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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검찰이 이번 내곡동 배임사건과 김재철 사장 배임사건에서는 어찌 이리도 온순하고, 너그럽고, 이해심 많고, 친절한지.
내곡동 사저 사건을 한번 보자. 의혹의 핵심은 ▲ 내곡동 땅 매입 시 이명박 대통령 아들 이시형씨 이름으로 매입한 집터 대금을 6억여 원 덜 부담하게 하여 시형씨에게 이익을 주면서 그만큼의 청와대(국가) 예산을 더 지출하여 국가에 손해를 입혔고 ▲ 이명박 대통령이 살 집을 아들 이름으로 매입하여 부동산 실명제 위반 혐의가 있으며 ▲ 수입이 별로 없는 아들 이시형씨가 땅값 12억 원을 어떤 방식으로 조달하고 그 이자 등을 어떻게 갚아왔는가 하는 점이다.
이 가운데 배임 관련은 이시형씨 명의의 집터 매입과정에 국가예산으로 6억여 원을 대신 내준 것이다. 집터 감정평가액은 17억3000여만 원인데, 이시형씨의 실제 부담액은 11억2000만 원으로, 차액 6억여 원이 청와대 예산이었다.
그런데 검찰은 '사저 건립으로 국가가 누리게 될 땅값 상승 이익을 이 대통령 쪽과 나누려 했다'는 청와대 쪽의 해괴한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미래 이익'의 일부를 미리 이시형씨에게 떼어줬다는 것이다.
이런 황당한 설명을 국민들이 그냥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으니, 정치 검찰의 지적 능력과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그들의 맹목적 충성심으로 인한 '멘붕' 상태와 국민을 우습게 아는 오만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맹물 수사'로 끝낸 내곡동 사건
실명제 위반혐의에 대해서도 청와대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 점을 보더라도 이번 내곡동 사건은 아예 처음부터 검찰이 사건의 진실을 밝힐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사건 핵심인 이시형씨에 대해서는 소환통보 한 번 없이, 한 번의 서면진술로 조사를 끝냈다.
김재철 MBC 사장의 경우에도 배임 등의 혐의로 여러 차례 고발되었음에도 아직 단 한 차례 소환조사도 없었다. 법인카드 유용 등의 혐의에 대해 김재철 사장이 지난 4월 영등포경찰서에 자진해서 출두하여 조사를 받은 것 외에는 그 뒤에 불거진 여성 무용인에 대한 20여억 원의 특혜 의혹 등과 관련된 조사는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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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배임사건, 그리고 내곡동과 김재철 배임사건은 여러 면에서 참으로 대조적이다. 같은 배임사건을 놓고 이렇게 정반대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검찰을 보면, 이게 같은 검찰 집단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세 사건의 핵심에는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이 있다. 그는 나의 배임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의 실무책임자인 서울중앙지검 1차장을 지냈고, 그뒤 승승장구하여 지금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다. 내 사건 때는 그렇게도 집요하고 혹독했는데, 내곡동과 김재철 배임사건 때는 양처럼 온순하다.
내곡동 사저사건이 터졌을 때, 훗날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 된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는 이 사건이 '배임'을 넘어 '탄핵 사유'가 된다고 했다. "경호처가 개입하는 등 공권력이 관여했기 때문에 이것을 '대통령의 사적 비리'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내곡동 사건에서 보여진) 법치주의 훼손은 대통령이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저버린 것이라서 당연히 탄핵 사유가 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임' 너머 '탄핵 사유'라고 했던 새누리당 비대위원
이상돈 교수는 '탄핵 사유' 주장에 앞서 이런 글도 발표했다.
'내곡동 게이트'는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한민국 정부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들이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한 것이니, 드러난 사실만으로 보아도 최고형이 징역 10년인 '업무상 배임죄'를 구성한다고 보기에 무리가 없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으나 1심, 2심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검찰은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공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세금 환급을 철저하게 받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정 전 사장을 기소했으니, 대한민국 정부의 일원인 검찰이 정부보다 공기업을 더욱 사랑한 셈이다.
보통 사람 상식으로는 정부기관인 검찰은 같은 정부기관인 국세청 편을 들어야 하는 법인데, 검찰이 별안간 KBS의 수호천사로 돌변해서 정연주 전 사장을 향해 칼을 빼들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무죄판결이 나왔지만 정 전 사장이 겪어야 했던 고초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 전 사장의 행위가 배임죄를 구성한다고 생각했던 검찰이, 아무리 선의로 해석해도 국고를 빼돌린 것으로 보이는 '내곡동 게이트'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상돈 교수가 궁금하게 여긴 검찰 수사는 결국 맹물 수사 뒤 무혐의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 정권 아래서 벌어지고 있는 배임 관련 세 가지 풍경은 정치 검찰의 자기모순을 극명하게 잘 보여주면서 검찰 개혁의 절박함을 새삼 깨우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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