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계 차도살인(借刀殺人)...
아마 무협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익은 이름일 것이다. 주인공을 상대로 무슨 음모라도 꾸몄다 하면 항상 나오는 게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이니. 한 마디로 남의 칼을 빌어 사람을 죽이는 무시무시한 계책이다.
출전은 <안자춘추>에 나오는 ‘이도살삼사’의 고사로, 제환공의 전성기를 다시 일으켰다고 일컬어지던 제경공 연간 명재상으로 이름 높았던 ‘
당시
"남은 복숭아 두 개는 신하 가운데 공이 큰 두 사람에 나눠주도록 하십시오."
연회에는 당연히 제나라를 대표하는 세 사람의 장사
"호랑이나 자라를 죽이는 것은 작은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군을 이끌고 천 리 먼 길을 가 적을 무찌르고 항복을 받아냈건만 복숭아를 받지 못하고 지금 이리 두 나라의 왕과 신하가 모인 자리에서 부끄러움과 비웃음을 당하고 있으니 어찌 고개를 들고 조정에 출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우리는 작은 공을 세우고도 복숭아를 먹었는데
그렇게
"안자는 복숭아로써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였으니(借刀殺人) 이것은 의로운 일이 아니다."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 바로 차도살인이다.
이 차도살인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한 것이 바로 <한비자>였다. <한비자><내저설-하>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정나라 환공이 이웃한 ‘회’나라를 공격하려 할 때였다. 회나라를 공격하기에 앞서 정환공은 회나라의 충신, 명장, 재사의 명단을 입수하여 이들에게 회나라를 멸망시키면 좋은 땅과 높은 벼슬을 내리겠노라 약속을 했었는데, 회나라의 국경에 이르러서는 아예 제단까지 차리고는 짐승을 잡아 제사를 올리며 그 약속을 결코 어기지 않겠노라며 다시 한 번 맹세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당연히 회나라 왕의 입장에서 그것은 그들 명단에 오른 이들이 이미 자신을 배반하고 정환공에게 내응을 약속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으니, 결국 정환공은 회나라 왕의 손을 빌어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이들을 모두 죽이고는 크게 힘을 쓸 것도 없이 회나라를 공격하여 정벌해 버린다.
힘이 부족하면 다른 사람의 힘을 빌고, 상대를 죽일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칼을 빌고, 적을 안에서부터 타락시키는 한편 적의 손을 빌어 적의 인재를 죽이는 것이야 말로 직접 손을 쓰지 않고도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는, 정치에 있어 권모술수를 강조했던 한비자가 추구한 부국강병의 계책이었다.
차도살인의 다른 유명한 예로서 삼국지에 나오는 예형과 채중과 채화의 채씨 형제의 일화를 들 수 있겠다.
예형은 후한 말기의 선비로, 특히 공융과 친했는데, 서로 공자불사안회부생이라 하여 공자가 죽지 않았고 안회 - 공자가 무척 아끼던 제자였다. - 가 다시 살았다 하며 서로를 높이 추켜세웠었다. 그러나 성격이 오만하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을 좋아하여 정작 공융이 조조에게 추천했지만 한실을 능멸하는 조조를 싫어하여 조조와 그 신하들을 면전에서 모욕 주었는데, 아무래도 제법 이름이 있는 선비라 직접 죽일 수 없었던 조조는 그를 유표에게로 보내버린다.
한 마디로 유표에게 죽으라는 것이었는데, 강남팔준이라 일컬어지던 당대의 재사 유표가 거기에 넘어갈 리 없었다. 여전히 유표 앞에서도 독설을 일삼던 예형을 유표는 강하의 황조에게 보내 버린다. 역시 황조더러 죽이라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무식하고 성질이 급하던 황조는 조조와 유표 앞에서처럼 독설을 지껄이던 예형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린다. 이로써 조조도 유표도 당대의 선비를 죽였다는 오명은 피할 수 있었으니, 황조의 손을 빌어 불쾌하기 이를 데 없던 건방진 녀석을 죽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저 유명한 적벽대전을 앞두고서 주유의 고민은 무척 깊었다. 원래 조조의 군대는 대개 화북 출신으로 수전에는 전혀라 할 정도로 경험이 없었다. 그런데 조조가 형주를 접수하면서 형주에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던 채씨 일족의 채모와 장윤을 대장으로 삼음으로써 장강의 지리와 수전의 경험을 손에 넣게 되었다. 하루하루 채모와 장윤의 지휘 아래 수전에 익숙해져 가는 조조의 군대를 보면서 주유는 동오(東吳)가 갖고 있던 조조의 군대에 대한 유일한 강점인 수전에서의 우위를 지키기 위해서 이들 두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 죽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이다.
그런 때 마침 주유와 동문수학한 처지로서 조조의 막하에 있던 장간이 세객으로서 자신을 찾아오게 되자 주유는 하나의 계책을 꾸미게 되었다. 마치 옛 친구를 만나 너무 반가워 못 견디겠는 양 함께 술을 마시고는 짐짓 취한 척 거짓으로 꾸민 채모와 장윤의 밀서를 보인 것이다. 당연히 뭐라도 하나 건져갈 것이 없나 눈에 불을 켜고 있던 장간은 옳다꾸나 그것을 가지고 조조에게로 돌아갔고, 조조는 그것을 보자마자 바로 채모와 장윤을 죽여 버렸으니, 뒤늦게 조조가 주유에게 속은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은 끝난 뒤였다. 비록 채모의 동생인 채중과 채화에게 그 자리를 대신하게 하기는 했지만 채모에 비해 한참 미치지 못했고, 동오는 이로써 한 가지 치명적일 수 있던 위험을 영원히 제거할 수 있었다.
여기서 전자는 내가 직접 손을 써 죽이게 되면 적잖이 피해를 입게 되니 다른 사람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고, 후자는 나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를 직접 손을 써 죽일 수 없는 상황에 있을 때 상대편을 이용하여 죽이는 것이니, 여기에 내 적을 다른 적으로서 공격하여 무찌르는 한 가지가 더해진다.
공자가 곡부로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칠 때의 일이다. 마침 제나라에 출사해 있던 제자 금뇌가 돌아와 제나라의 재상 자항이 군을 일으켜 노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공자와 그 제자들 역시 노나라 사람이라 아무래도 나라의 위기를 그대로 보아 넘길 수 없어 대책을 논의하는데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자공이 나서 자신을 제나라로 보내 줄 것을 청했다.
"제게 방책이 있습니다."
먼저 자항을 찾아간 자공은,
"노나라는 약한 나라이니 공격하면 바로 함락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 논공행상을 두고 제나라 안에 많은 분란이 일어나겠지요. 그러면 재상께서도 편치만은 못하실 겁니다. 그러나 오나라는 강해서 만일 오나라와 싸우게 되면 짧은 시일 안에 쉽게 이길 수 없을 것이니 그 동안 제나라의 내정은 재상께서 오로지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국씨와 고씨 등 다른 씨족의 도전에 직면해 있던 자항으로서는 이것이 더할 나위 없는 계책으로 여겨졌다. 자항이 자신이 의도한 대로 넘어가자 자공은 이번에는 오나라의 왕 부차를 찾아간다.
"제나라가 오나라에 조공을 바치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지금 노나라를 치려 하고 있습니다. 왕께서는 어째서 이것을 두고 보고만 계십니까? 만일 제나라를 깨뜨리고 노나라를 굴복시키면 장차 오나라는 과거 진나라가 그러했듯 천하를 쟁패하는 자리에 오를 것이니 왕께서는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비록 지금 월나라가 의심스럽다고는 하지만 월나라는 작은 나라이고 제나라는 큰 나라입니다. 만일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제나라가 더욱 강성해져 큰 위협이 될 터이니 작은 일과 큰 일을 혼동하셔서는 안 됩니다. 만일 필요하다면 제가 월나라에 가서 그들로 하여금 오나라를 위해 활과 창을 들고서 돕도록 하겠습니다."
강대국 초를 패퇴시키고 한참 자신감에 차 있던 부차는 그 말에 솔깃해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군을 이끌고 제나라를 치겠노라 대답한다. 오나라에서의 일이 끝나자 자공은 다시 월나라로 향한다.
"일을 꾸미는 데 있어 상대가 의심을 품게 되면 참으로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지금 오왕 부차가 귀국을 의심하고 있으니 대부 백비에게 뇌물을 바치고 온갖 선물로서 부차의 마음을 풀어주십시오."
구천 역시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라 범려와 더불어 월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문종을 시켜 선물을 싸들고 오왕을 찾아가 삼천의 정병으로 오왕을 돕겠다 약속하도록 한다. 이에 비로소 부차도 월나라에 대한 의심을 풀게 되니 자공은 여기에 더해,
"남의 병사까지 빌어 군을 일으키는 것은 패자의 도리가 아닙니다. 이들은 나라 안에 두어 지키도록 하고 오왕의 군대로서만 출진해야 합니다."
이미 자공을 뼈 속까지 믿게 된 부차인지라 그대로 따랐다.
오나라와 월나라의 일이 마무리되자 자공은 다시 진나라로 찾아가 진나라 정공을 만나 장차 오왕 부차가 군을 일으켜 제나라를 치려 함을 알렸다.
"만일 오왕 부차가 제나라를 무찌르게 되면 장차 진나라와 더불어 천하의 패권을 다투게 될 터이니 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정공 역시 알려주어 고맙다며 오나라를 공격할 준비를 서둘러 갖추었다.
판은 만들어졌고 이제 실행만 하면 되었다. 먼저 부차는 제나라 간공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제나라 국경을 넘었는데, 마침 노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문수에 주둔해 있던 대장 국서는 급히 군을 이끌고 애릉으로 가 오나라 군대를 맞아 싸우게 된다. 그러나 당시 오나라는 한창 전성기에 있었고, 제나라는 경공 이후 점차 쇠퇴하던 터였기에 애릉에서 군은 전멸하고 대장인 국서는 사로잡혀 죽는 대패를 당한다.
그리하여 부차는 더욱 기세가 올라 각지의 제후들에게 격문을 띄우고 황천에서 회맹하고자 군을 이끌고 진격해서는, 마침내 천하 제후들이 모인 자리에서 진나라 정공과 패권을 다투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오나라가 완전히 비어 버린 것을 안 구천이 군대를 이끌고 오나라를 공격하던 참이었고, 결국 부차는 회맹을 멈추고 서둘러 회군하여 월나라 군대와 싸우다 고소에서 대패하게 된다. 춘추오패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던 부차의 몰락의 순간이었다.
노나라를 공격하려는 제나라를 오나라로써 공격하고, 오나라를 다시 월나라로써 배후를 치도록 하고, 진나라로서 오나라가 패자가 되지 못하도록 견제케 하니, 정작 노나라는 별로 힘을 쓰지 않고도 ‘제’나라와 ‘오’나라라고 하는 가장 강대한 적을 손쉽게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남의 손을 빌어 다른 이를 치는 차도살인의 극치라 할 것이다.
참고로 오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함에 있어서도 차도살인이 쓰이고 있었는데, 제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반대하던 오자서를 백비의 건의로 제나라에 보내 죽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간공이 오나라가 공격해온다는 소식을 듣고 오자서를 죽이려 할 때 제나라의 신료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부차는 직접 자신의 손으로 오자서를 죽여야 했다. 평생을 오나라를 위해 몸 바쳐 온 충신을 죽였으니 오나라가 끝내 멸망하는 데에는 이 사건도 적잖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차도살인의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으니 그 가운데 조선 14대 임금 선조 때의 일들이다.
선조는 그 즉위부터 명종의 양위교서를 받지 못했기에 정통성에 대해 적잖이 컴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새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커져 버린 사림(士林)의 존재에 대해 깊은 경계심과 적개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리하여 사림을 분열시켜 약화시키고자 하나의 계책을 꾸미게 되었다. 그것이 그 이름도 유명한 기축옥사다.
사실 발단은 별 것 아니었다. 정여립이라는 자가 대동계를 만들고 사사로이 세력을 키우는데, 이것을 동인에 원한을 품고 있던 송익필이 황해도 관찰사 등을 통해 이를 참소하여 키움으로써 역모사건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여기에 선조는 왕실과도 인연이 깊던 정철에게 국문(鞠問)을 맡김으로써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참혹한 고문을 가하는 전례없는 옥사로 만들어 버린다.
희생자만 물경 천, 호남의 유림은 이 일로 완전히 초토화되어 조선왕조가 끝나기까지 거의 유명무실하게 되어 버리니, 이로써 동인과 서인, 동인 안에서도 북인과 남인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감정의 골이 생겨 버린다. 이후 끊임없이 이어진 옥사와 환국은 결국 이때 심어진 서로에 대한 증오가 화근이 되어 일어난 것으로써, 최초의 근대적인 정당정치로 발전할 수도 있었던 붕당을 서로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사생결단의 장으로 만들어 마침내는 조선이 쇠퇴하여 끝내 멸망하고 마는 한 이유가 되었으니, 정철이라고 하는 소인배의 손을 빌어 사림이 다시는 서로 화합하지 못하도록 일을 꾸민 선조의 차도살인의 결과였다.
그리고 바로 몇 해 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이번에는 선조가 차도살인에 당하게 된다. 사실 이미 선조는 이순신을 죽이고 싶어했다. 그렇게 왕위에 대한 컴플렉스가 심하던 선조였던 터라, 자신을 대신하여 훌륭히 전란을 수습하고 있던 광해군이나 왜군과 싸워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던 이순신이나 모두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적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일본군의 대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간첩 요시라를 파견해 조선의 입장에서 원수라 할 수 있는 가토 기요마사가 조선으로 들어오는 날짜와 경로를 조선 조정에 전해왔다. 첫째 목적은 신중한 이순신이 자신의 정보를 따르지 않을 것이니 이로써 이순신을 죽일 빌미를 만들자는 것이고, 만일 이순신이 정보를 믿고 가토를 죽이려 든다면 고니시 입장에서 증오스럽기 이를 데 없는 가토를 죽일 수 있으니 그것도 좋다고 하는 이중의 차도살인의 계략이었다. 그리고 그렇지 않아도 이순신을 죽이고자 마음먹고 있던 선조였던 터라 바로 넘어가고 만다.
결국 이순신은 파직당하여 서울로 압송되고 무능하기 이를 데 없는 원균이 대신 삼도수군통제사로 왔으니, 고니시로서는 가토가 죽지 않은 것만이 아쉬울 뿐이었고, 일본군은 마침내 이제껏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던 조선수군을 칠천량에서 완전히 와해시켜 버린다. 비록 이순신이 죽지 않고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어 울돌목에서 일본 수군을 막아내게 되었지만, 이로써 일본군은 완전히 호남의 곡창지대를 유린하게 되니 그 모든 것이 한 번의 계략에서 결정된 것이었다.
차도살인을 역으로 이용한 경우도 있었다. 을미사변에서의 흥선대원군이 그랬었다.
을미사변의 경우 사실 그 배후에는 흥선대원군이 있었다. 권력의 정점에서 내몰리고, 다시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 고초를 겪어야 했던 흥선대원군의 명성황후에 대한 원한은 매우 깊었고, 그래서 명성황후를 제거해주겠노라 접근한 일본의 제의를 거부할 수 없었다. 즉 흥선대원군은 일본의 손을 빌어 증오스럽기 이를 데 없는 명성황후를 제거하고자 한 것이었는데, 일본은 바로 그러한 흥선대원군의 증오심을 이용해 내부에서의 협력자를 만들고 보다 손쉽게 명성황후를 제거할 수 있도록 일을 꾸밀 수 있었던 것이다. 이용하려다가 정작 이용당한 경우라 할까?
국가와 국가 사이에도 차도살인은 적용된다. 러일전쟁에서 영국이 취한 전략이 그것이었다.
러시아가 팽창을 시작하면서 유럽 열강들의 최대 과제는 러시아의 팽창을 막는 것이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많은 인구와 가장 거대한 영토, 그 넓은 영토에서 생산되는 막대한 농산물 등은 산업혁명으로 한창 근대를 열어가고 있던 유럽의 열강들에게 있어서도 위협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러시아 만큼이나 서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별로 친하지 않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지원해 프랑스와 영국의 연합군이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기도 했었다. 특히 당시 세계의 거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던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경우 부동항을 얻으려 남하하는 러시아의 움직임을 무척 경계해서 그것을 막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었다. 그 가운데는 조선의 거문도를 강제점거하고, 미국과 협의해 조선의 독립을 열강의 이름으로 보장하고자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선의 독립을 지원하는 대신 조선으로 하여금 러시아를 막는 첨병역할을 맡기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청일전쟁의 결과 일본이 청에 승리하면서 영국은 일본에서 또다른 가능성을 본다. 청이나 조선을 앞세워 러시아를 막으려 하던 것을 이미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루고 있던 일본을 이용함으로써 보다 수월하게 러시아를 막을 수 있겠구나 계산이 서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영국은 일본을 본격적으로 후원하게 되니, 러일전쟁에 일어났을 때는 미국과 더불어 가장 많은 차관을 제공하고, 극동으로 향하는 러시아의 발틱함대의 항해를 방해함으로써 쓰시마 해전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로써 러시아는 극동에서의 남하를 결정적으로 저지당하게 되니, 이후 일본은 러시아 -이후 소련-의 극동에서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첨병이자 방패막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인들이 나치의 지배에 항거하여 봉기를 일으키고 있던 바르샤바의 바로 코앞에서 진격을 멈췄던 소련군의 경우도 차도살인에 해당한다.
어차피 폴란드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 했던 소련군의 입장에서 저항적이고 양심적이고 용기 있는 행동을 하는 시민과 지식인이란 거추장스러운 존재에 불과했다. 이미 독일과 폴란드를 분할 점령할 때 카탄 숲에서 폴란드의 장교와 지식인들을 집단으로 학살한 바 있었던 소련으로서는 차라리 그들이 나치의 손에 죽어주는 편이 더 좋았던 것이다. 결국 소련군에 의해 나치가 패퇴할 것을 믿고 봉기를 일으켰던 폴란드인들은 소련의 의도대로 철저히 학살당하고 진압당했으니 소련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었으니 이 또한 차도살인이라 할 것이다.
이밖에도 찾아보자면 도저히 셀 수 없이 나오는 것이 차도살인이다. 차도살인이 뭔지 모르는 다른 문화권에서도 차도살인은 책략의 하나로서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그라쿠스 형제를 도리어 그들이 위하려 했던 평민들을 선동해 죽이는 것이나,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가 상을 미끼로 그 휘하의 전사들을 꼬드겨 경쟁자들을 제거한 것 등등... 하긴 기왕 죽일 거 내 손을 더럽히지 않으면 더 좋은 것이고, 굳이 내 힘을 소모하지 않고도 죽일 수 있으면 그 이상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의 상식이었기에 차도살인은 여러 형태로 역사의 수많은 장면에서 수도 없이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무협소설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차도살인지계는 그야말로 우려도우려도 끝이 없는 책략의 근원인 것이다.
아무튼 차도살인지계의 요체를 말하자면 한 마디로 "손 안 대고 코풀기"라 할 수 있을 텐데, 내가 직접 손을 쓸 것 없이, 내가 직접 나의 힘과 노력을 들일 것 없이, 다른 누군가를 움직여 이용함으로써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달성하자는 것이다. 물론 그러자면 그 상대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한다. 그리고 약간의 속임수와 약간의 선동과 약간의 선물과 약간의 댓가와, 결국은 어떻든 내가 직접 손을 쓰는 것보다 낫기에 차도살인이다. 어쩌면 가장 베스트셀러라 할 수 있는 병법삼심육계의 제 3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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