處世

[스크랩] 제7계 무중생유

kongbak 2012. 1. 15. 23:10

 

7계 무중생유(無中生有)...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있는 것을 만든다... 한 마디로 그냥 사기다. 포커에서 흔히 쓰이는 ‘뻥카’다. 쥐뿔도 가진 것 없으면서 마치 뭐라도 대단한 패를 가진 듯 내지름으로써 상대의 오판을 유도하고 끝내는 승부를 포기하도록 만들어 이익을 취하는 바로 그것이다. 속이는 것. 속도록 만드는 것. 그로서 이익을 얻는 것. 그것이 무중생유(無中生有)라 하는 것이다.

 

 

당 현종 연간 안록산의 난이 일어났을 때 안록산은 항복해 온 장수 영호조로 하여금 여전히 항복할 생각을 않고 있는 장순을 공격케 하고 있었다. 당시 웅구에 주둔중이던 장순의 병력은 모두 2, 그러나 영호조가 이끌고 있던 병력은 안록산에게서 받은 병력까지 모두 4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20배의 병력차이, 그러나 지모와 재략이 뛰어났던 장순은 숫적인 열세에도 영호조의 공격을 잘 막아내어 몇 달을 버티고 있었다. 결국 영호조는 병력의 우세를 앞세워 성을 포위하고 성안의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려 공격하기로 작전을 바꾸게 되었다. 하기는 큰 병력으로 작은 병력이 버티는 성을 공략하는 데 시간이 조금 많이 걸려서 그렇지 이보다 좋은 작전도 없었다.

 

그러나 당시 웅구성을 지키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장순이었다. 물자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던 영호조의 작전에 대해 장순은 허수아비에 사람의 옷을 입혀 성 밖으로 내보이는 것으로 대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 형체도 알 수 없는 사람같은 것이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일단 성을 떨구어야 하는 영호조의 입장에서는 활을 쏘아 공격하도록 명령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허수아비에게 쏟아진 화살들은 아무런 상처도 없이 고스란히 장순의 것이 되고 말았다. 밤에는 영호조의 군사들이 성안으로 화살을 쏘고, 그 화살을 받아 낮에는 장순의 병사들이 다시 영호조의 병사들에게 쏘아 보내는 웃지못할 코미디같은 싸움이 며칠이나 계속되었다. - 아마 이것과 손권의 일화가 합쳐져서 제갈량이 하룻밤 사이 10만 발의 화살을 얻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 

 

결국 그와 같은 싸움이 며칠이나 계속되자 처음에는 거의 조건반사로 화살을 날리던 영호조의 병사들도 더 이상은 허수아비에 속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자 장순은 이번에는 허수아비가 아닌 실제 사람을 허수아비처럼 꾸며 내려 보냄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화살이 아닌 방심하고 있던 영호조의 병사들의 목을 노리게 되었다. 갑작스런 기습에 마음을 놓고 있던 병사들은 당황했고, 결국 불과 2천의 적에게 4만의 대군은 형편없이 패해 물러나게 되었다.

 

허수아비로서 실제 사람인 것처럼 위장하여 적을 피로하게 하고 화살을 얻은 것도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은 만들었으니 무중생유, 허수아비에 마음을 놓게 되자 사람으로서 허수아비처럼 위장하여 상대로 하여금 방심하게 만들었으니 그것도 무중생유, 겹겹이 무중생유로서 상대를 기만하여 소수로서 적을 물리치고 있으니, 바로 여기에서 무중생유가 나왔다.

 

 

서기 357년 동진의 수도 견강은 음울한 긴장에 휩싸여 있었다. 전진의 황제 부견의 동생 부융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동진을 향해 진격해 오고 있다는 정보가 전해진 때문이었다. 그러나 달리 대책이 있을 리 없었다. 중국 전토를 지배하던 서진 시대에도 오호의 침입을 막지 못해 동진으로 피난 와 망명정부를 꾸리게 된 것 아닌가. 하물며 강동의 좁은 영역만을 지배하게 된 동진에게 있어 부견의 100만 대군을 막아낼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아주 죽으라는 법은 없었는지 대신 가운데 사안이라는 이가 나서서 계책을 알렸다.

 

"부견의 군대가 비록 백만에 이른다고는 하나 그들은 모두 여러 종족 가운데 징집해 온 것이어서 전투의지도 고르지 못하고 오합지졸입니다. 여러 해 동안 전쟁을 치러 온 탓에 병사도 전마도 지쳐 백성의 원망 또한 높아 이번의 침략은 인심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부견은 병력을 회수 일대에 배치하려고 했다가 전선이 너무 길어져 있습니다. 그에 반해 우리쪽은 적에게 항전하려는 병사와 백성들의 사기가 한층 높아져 있는데다 군에 대한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음으로써 싸움의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고, 또 지리적으로도 유리함이 있으니, 폐하께서는 적에게 항거하고 있는 전선의 병사와 백성들에게 속히 명령을 내리시어 군을 보내시어 토벌하시기 바랍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주 마음이 놓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의지할만한 부분이 있다고 하니 무제로서도 적이 마음이 놓일 수밖에 없었다. 무제는 다급히 사안에게 직접 군을 이끌고 부견을 토벌하러 가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사안은,

 

"소신의 나이가 올해가 지나면 반백이 되는데 전쟁에 임하여 교전하는 군략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임무는 친동생인 사석이 더 적합할 것입니다.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나마 방책을 말하는 것이 사안 한 사람 뿐이라 무제는 그의 의견을 따라 사안의 동생 사석에게 군을 맡겨 부견과의 싸움을 책임지도록 했다. 무제의 명령이 있자 사안은 자리에서 물러나 바로 사석과 만나 앞으로의 계책을 논의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전진이 동진으로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수양으로 대장 호빈에게 병력 오천을 주어 먼저 보냄으로써 일단 전진군의 진격을 저지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융이 이끄는 전진군의 진격속도는 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호빈이 낙수와 비수가 만나는 협석에 겨우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수양은 부견의 군대에 의해 점령당한 뒤였다. 오천의 병력으로 수양을 점령한 전진의 대군을 대적할 수는 당연히 없었고, 그렇다고 군을 물리게 되면 협석이라는 요충지마저 잃게 되니 호빈으로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대로 협성에 진을 치고 사석이 본대를 이끌고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하지만 부융이 군을 이끌고 협석을 공격하는 한편, 장수 양성을 시켜 회수를 봉쇄할 수 있는 낙간을 점령하도록 하니 사석의 군대는 협석에 이르지 못하고 낙간 이십오리 앞에 멈춰설 수밖에 없었고, 호빈의 군대는 그야말로 전진의 군대에 완전히 포위되는 지경에 몰리고야 말았다. 보급은 끊기고 군량미도 떨어져 당장에라도 전진군이 밀고 들어오면 두 손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절체절명의 상황에 호빈은 전진군의 공격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한 가지 꾀를 내었다. 모래를 가지고 키질을 함으로써 마치 쌀로 키질을 하는 것처럼 전진군의 오판을 유도한 것이다.

 

결과는 일단은 대성공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먼 길을 달려온 부융으로서는 군량미마저 풍부한 호빈의 군대를 공격하기가 영 내키지 않았던 터라 호빈은 겨우 아주 귀중한 약간의 여유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약간의 여유를 틈타 사석에게 협석의 어려움을 전하고 구원을 청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 중간에 편지를 지니고 있던 병사가 부융에게 잡히면서 모든 것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니 협석의 급박한 사정을 알게 되었으니 부융은 당장에라도 8천의 기병을 이끌고 협석을 공격하여 견강으로의 길을 열고자 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협석의 호빈군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일이 그렇게 돌아가려니 이번에는 전진의 황제 부견이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나왔다.

 

"기왕에 저들이 저리 한계에 몰려 있으니 굳이 군을 이끌고 공격하는 것보다는 사신을 보내 투항하는 자에게 포상을 약속함으로써 안에서부터 와해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일견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손자병법에도 나오는 최상의 계책인 듯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신에 있었다. 양양성을 지키다 세불리(勢不利)로 전진에 항복하여 전진군에 속해 있던 전 동진군 양양성 수비대장인 주서를 하필이면 동진에 사신으로 보낸 것이었다. 주서가 아주 기회주의적인 인물이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강직해서 새로운 조정에도 기꺼이 충성을 바치는 인물이었다면 문제가 아니었을 것을, 주서는 세불리하여 항복은 하였으되 동진에 대한 충성과 미련이 남아 있던 참으로 난세에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을 사신으로 보내 놓았으니 부견의 계산이 제대로 들어맞을 리 없었다.

 

결국 주서는 사석의 진영으로 찾아가자마자 바로 사석과의 독대를 청해서는 전진군의 허실과 부견의 속내를 낱낱이 전하고는 오히려 동진군의 첩자로서 전진군의 판단을 흐리는 임무를 맡아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비수가에서 벌어진 동진과 전진과의 싸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니, 이로써 부견의 모든 계책은 수포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이로써 부견과 전진은 마침내 패망하게 되니 그 단초가 바로 이 한 번의 실수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었다.

 

사석과 그의 동생인 사담은 - 후세인이 아니다.^^- 먼저 회수를 통제하고 있던 낙간을 탈환하기로 한다. 당시 낙간을 방어하고 있던 전진의 장수는 낙간을 점령한 양성 자신이었는데, 전진의 대군을 믿고 있는데다 낙간을 점령하는 것도 워낙 쉬웠던 터라 마음을 완전히 놓고 경계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 것을 아예 모두가 잠든 틈에 밤을 이용해서 야습을 가했으니 대장인 양성조차 뭐가 어찌 되는지도 모르고 허둥대는 사이 목숨을 잃고 낙간은 순식간에 동진의 손아귀로 들어온다. 전진의 대군이 아직 완전히 편제되지 않았음을 주서를 통해 들어 알게 됨으로써 취할 수 있었던 대범한 작전이었다.

 

낙간이 떨어지자 협석의 호빈군을 압박하고 있던 전진군의 포위망도 자연스레 풀어졌다. 남은 것은 수양에 머물고 있는 전진의 황제 부견과 그의 동생이자 전진의 대장군인 부융, 그리고 그들이 이끌고 있던 전진의 주력이었다. 물론 아직 전진의 모든 군대는 수양에 도착하지 않고 있었으니 그나마 병력의 차이는 사석을 비롯한 동진군으로서도 한 번 싸워 볼 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수양은 워낙 요충이고 요새였기에 부견이 전진의 모든 병력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농성을 하자면 동진군으로서는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더구나 전진군이 모두 도착하게 되면 병력의 차이는 거의 열 배에 가까워지니 그 뒤로는 그야말로 대책이 없었다. 결국 사석은 역시 동생인 사현의 계책에 따라 부견을 수양성에서 끌어내기로 결심한다.

 

사실 계략이랄 것도 없었다. 편지를 한 장 보내 수양성을 나와 비수가에서 결정을 벌이자고 한 마디 하는 것으로도 충분했으니까. 화북을 거의 통일하고 지금껏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던 상승의 전진군과 부견이었던 터라 그렇지 않아도 병력에서 열세인 동진군을 얕잡아 보는 마음에, 그리고 그러한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가는 자신의 체면을 손상당할지도 모른다는 허영심에, 부견은 동진군이 강을 건너는 사이 요격하면 될 것이라 휘하장수들을 달래고는 성을 나와 비수 서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을 사석은 군을 몰아 공격한다.

 

혼란이 있었다. 적에게 선제공격을 허용할 경우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작은 혼란이었다. 아직 동진군은 강을 건너는 도중이었고 이제라도 진을 정비하여 동진을 공격케 하면 얼마든지 동진군을 격멸할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여기서 주서가 다시 큰 역할을 했다. 전진군의 진중에서 모두가 갑작스런 싸움으로 혼란스러운 사이 이렇게 떠들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진군은 패했다! 진군은 패했다!"

 

당시 전진군은 전진에 의해 멸망당한 다른 여러 민족이나 종족, 나라들의 병사와 백성들이 혼재되어 있는 다국적 군대였다. 한창 이기고 있을 때는 상관없지만 상황이 이렇게 혼란스럽게 돌아가게 되면 어차피 전진에 대한 귀속의식도 희박하기에 바로 흩어지기 쉬웠다.

 

아니나 다를까 주서가 떠들고 다니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동진의 영토에서 징집된 한족 출신의 짐꾼들이 먼저 달아나기 시작했다. 동진의 한족들이 달아나자 이번에는 화북의 한족들이, 한족들이 모두 앞다투어 달아나는 것을 본 갈, 선비, , 흉노의 병사들이 제각기 말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마치 하나의 도미노가 쓰러지면 모든 도미노가 연달아 쓰러지는 것처럼 그것은 멈출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이었다. 혼란을 수습하려던 부융마저 갑작스레 다가온 적군에 목숨을 잃고, 마침내 부견도 더 이상 자리를 지키기를 포기하고 병사들로 하여금 자신을 호위하도록 한 뒤 군을 이끌고 퇴각하기 시작한다.

 

물경 백 만. 그러나 부견이 자신의 근거지로 돌아왔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은 고작 10만 정도의 인마 뿐이었다. 부견 자신도 어깨에 화살을 맞아 부상을 입은 채였다. 그야말로 가진 모든 것을 털린 셈이었는데, 결국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장안으로 이주시켰던 선비족의 반란으로 말미암아 장안에서 쫓겨나 강족인 요장에게 감금당한 채 죽고 말았으니, 이로써 저족과 부견의 전진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비수에서의 한 번의 싸움으로 화북을 거의 지배하던 전진이라고 하는 대제국이 사라진 것이다. 그것도 주서의 느닷없는 거짓말 한 마디에 의해서.

 

이 싸움에서 무중생유는 모두 두 번 쓰였다. 한 번은 협석에서 호빈에 의해서, 결국 부융은 호빈의 무중생유에 넘어가 협석을 공격하는 것을 주저하여 호빈과 동진군에 귀중한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한 번은 가장 치명적인 비수가에서의 싸움에서 주서에 의해 쓰였다. 작은 혼란을 틈타 마치 전진군이 싸움에서 완전히 패한 것처럼 헛소문을 퍼뜨림으로써 작은 혼란을 실제 완벽한 패전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이로써 동진은 고작 8만의 병력으로서 전진의 100만 대군을 막아냈으니, 일찌감치 전진에 의해 종식될 수 있었던 중원의 혼란은 다시 200년에 걸친 남북조시대로 이어지게 된다.

 

 

삼국지에서도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계략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무중생유였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당양 장판파에서 장비가 조조를 상대하던 장면이었다.

 

당시 유비는 형주와 양양의 아홉 군을 다스리던 유표의 식객으로서 유표로부터 북쪽의 조조를 견제하라며 신야라고 하는 작은 고을을 받아 다스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신야는 너무 작은 고을이라 하후돈과 조인이 이끄는 국지적인 규모의 작은 공격 정도는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었지만 조조가 마음먹고 대군을 이끌고 밀고 내려오는 데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결국 유비는 신야를 포기하고 그나마 자신과 친하던 유기가 다스리는 강하로 이동할 것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유비의 인품과 명성을 흠모하여 그를 따라나선 신야의 백성들이었다. 전란의 시대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영웅의 존재란 난세에 지친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숭배의 대상이기도 했기에, 그렇지 않아도 악명이 자자하던 조조군을 피해 유비를 따라 나서기로 한 백성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병사들이야 이동하는 자체가 그들의 일이니 조조군을 피해 발걸음을 재촉해 강하로 달려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평생 고향을 벗어나 본 적조차 손에 꼽을 정도인 일반 백성들은 그게 아니었다. 더구나 조조군은 맹덕신서에 나온 바와 같이 다수의 기병을 전술적으로 운용하고 있었다. 그 기병이 앞장서서 유비의 무리를 쫓고 있으니 따라잡히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였다.

 

마침내 당양 장판파에서 조조군의 선두가 유비군의 꼬리를 물었다. 이미 머릿수에서도 조조군에 크게 열세였던데다가, 한 쪽은 퇴각하던 중, 다른 한 쪽은 그것을 쫓아 추격하고 있던 중, 기세에서도 이미 상대가 안 되었다. 더구나 그 안에는 상당수 전력외의 민간인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유비군은 금새 혼란에 휩싸여 와해되고 말았다. 우두머리인 유비의 가족조차 어디서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극도의 혼란 가운데 유비조차 불과 수십 명의 호위를 받으며 몸만 피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그 짧은 한 순간에 상황은 모두 끝나 버리고 말았다. 남은 것은 우두머리인 유비를 쫓아 사로잡는 것 뿐. 이미 싸움은 마무리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바로 그때 장비가 나섰다.

 

조조군이 장판파의 작은 개울까지 쫓아왔을 때 그 건너편에는 한 명의 장수가 버티고 서 있었다. 더구나 그 장수의 뒤에는 뭉게뭉게 흙먼지가 높게 일고 있었으니 분명 적지 않은 병사들이 도사리고 있을 터였다. 조조군은 너무나도 당당하게 다리를 막고 선 그 장수와 그 뒤의 부옇게 일고 있는 흙먼지를 보고 그대로 멈춰서서 잠시 사태를 관망하고 만다. 유비로서는 그야말로 백척간두의 위기에 찾아온 실낱같은 작은 여유였다. 그 사이 조운이 아두를 안고 유비의 진영에 합류했고, 다시 장비와 합류하여 장강으로 이동했을 때는 관우와 공명이 이끌고 온 강하의 유기의 수군이 그를 맞이함으로써 조조군의 추격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었으니, 그 작은 여유로 인해 유비와 조운과 모두가 목숨을 구했다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장판교를 막고 있던 장비에게는 고작 수십 명의 병력밖에는 없었다. 수천의 조조의 기병 앞에 수십은 그야말로 한 줌도 안 되는 병력이었다. 그러나 장비가 워낙 당당하게 버티고 서서 조조군을 노려보고 있었고, 그 뒤에서는 병사들이 말꼬리에 나무막대기를 달고 부지런히 돌아다님으로서 흙먼지를 자욱하게 피워 올리고 있었으니 조조군으로서도 꺼뻑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유비에게 남은 병력이 얼마 안 되는 것을 알아도 기왕에 이긴 싸움에 무리하기 싫은 사람의 심리가 그 뻔한 속임수에도 넘어가지 않을 수 없도록 한 것이었다.

 

 

하긴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가 익히 아는 어떤 이야기에서도 무중생유는 나온다. 바로 한국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드물 프랑스에 루팡이 있다면 조선에는 그가 있다고 하는 희대의 사기꾼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다.

 

조선시대 워낙 서북출신에 대한 차별이 심했기에, 과거에도 급제하고 여기저기 가산을 헐어 뇌물도 넣어 봤지만 기껏 김선달에게 돌아온 것은 그의 이름을 대신하게 된 선달이라는 이름뿐인 감투 하나였다. 도저히 안 된다고 하는 현실을 깨닫게 된 김선달은 더 이상 벼슬자리에 대한 미련을 접은 대신 양반과 특히 서울출신에 대한 삐딱한 복수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김선달은 자신의 모든 능력을 양반과 서울출신들을 골려주는 데 쓰게 된다.

 

대동강 물 팔아먹는 이야기도 그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원래 경강상인들은 조선의 상권의 중심인 시전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의주의 만상이나 동래의 내상, 심지어 개경의 송상마저도 어느 정도 자기 아래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당시 평양에서도 경강 출신의 상인들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 출신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있는데다, 자기 고향인 평양에 와서 저리 활개치고 있는 것을 보니 배알이 꼴려도 이만저만 꼴리는 것이 아닌 터라, 김선달은 그들을 골려주기 위해 한 가지 계책을 꾸민다. 바로 대동강 팔아먹는 김선달을 유명케 한 바로 그 사건이다.

 

그의 계획은 아주 단순했다. 먼저 평양의 물장수들에게 돈을 나누어준다. 그리고 대동강에서 물을 길 때마다 물장수들에게 그 돈을 자신에게 돌려주도록 한다. 그 뒤의 내용은 경강상인들이 알아서 할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물장수들이 물을 길 때마다 김선달에게 돈을 주는 것을 보고 착각을 해도 단단히 착각을 한 경강상인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김선달에게 달려들었다. 대동강 물이야 마를 날이 없으니 그 물을 물장수들에게 팔 수 있다면 어마어마한 떼돈을 벌 수 있으리란 계산에서였다. 물론 김선달은 서툴게 대동강이 자신의 소유라거나 하는 대놓고 하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단지 사실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경강상인들로 하여금 마음껏 오해하도록 만든 것 뿐이었다. 결국 경강상인들은 그 모호한 태도에 더욱 몸이 달아 무려 3천 냥이라는 어마어마한 거금을 내고 대동강을 사게 되었으니, 경강상인들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내가 언제 대동강을 내 소유라고 했느냐? 팔지 않겠다고 하는데 사라고 강요한 건 당신들 아니냐?"

 

라는 비웃음 뿐이었다. 사기는 사기대로 당하고 거기다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할 망신까지 당하고 만 것이었다.

 

원래 자기 소유가 아닌 대동강을 자기 소유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 것, 그것을 더욱 확실히 밝히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알아서 마음껏 착각하고 오해하도록 만든 것, 이야말로 가장 극적인 무중생유의 예라 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사막의 여우라 불리웠던 저 유명한 롬멜 역시 북아프리카에서 무중생유로서 자신의 신화를 만들어갔다.

 

북아프리카에 롬멜이 두 개 사단으로 이루어진 북아프리카 군단과 함께 도착했을 때, 롬멜에게는 아직 충분한 숫자의 전차가 주어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당시 패주에 패주를 거듭하고 있던 이탈리아군을 뒤쫓느라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져 있던 영국군은 너무나도 먹음직스러운 먹이였다. 만일 당장 부족한 전차만 어떻게 할 수 있다면 단번에 저들의 공세를 차단하고 역습을 가해 리비아 너머 이집트까지 쫓아낼 수 있을 터였다. 그것은 롬멜에게 이미 현실로 보였다. 롬멜은 결심했다.

 

어차피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적을 죽이느냐가 아니다. 죽이고 부수는 거야 그 과정일 뿐이고 결과적으로 상대를 내가 목표한 곳에서 쫓아낼 수 있다면, 그래서 상대로 하여금 패주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싸움은 이기는 거다. 전차가 필요한 것도 상대를 그처럼 쫓아내기 위한 것이지 그저 파괴하고자 하는 목적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전차가 아니라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이건 사후의 평가이고 롬멜의 생각은 더욱 직관적이었을 것이다. 전차가 아닌 것을 전차로 보이도록 만들어 적으로 하여금 오판하도록 하자.

 

롬멜은 먼저 가용한 차량에 판자를 씌워 전차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판자떼기 전차를 가지고 영국군을 향해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진짜 전차라고는 몇 대 없는 그야말로 판자떼기로 만들어진 이미테이션들, 대개는 비전투차량들로 이루어진 가짜 전차부대였지만 무질서하게 패주하는 이탈리아군을 역시나 무질서하게 쫓고 있던, 오랜 전투로 말미암아 지치고 고갈되어 있던 영국군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더구나 영국군의 주력은 그리스로 보내졌다가 다시 크레타로 후퇴해 있던 상황이었다. 주력이 빠진 지칠대로 지친, 흐트러진 군대에게는 전차의 모습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실제 전차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되었다.

 

단 한 번의 공세였다. 전차조차 없이 퀴벨바겐 등의 비전투 차량들에 판자떼기를 씌워 급조한 가짜 전차부대에 의해 이루어진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영국군은 무려 토부룩까지 밀려났다. 아마 토부룩에서 결정적으로 저지되지 않았다면 아직 크레타의 영국군이 돌아와 있지 않던 이집트와 알렉산드리아까지 독일군의 공격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심지어 오코너를 비롯한 영국군의 최고지휘관 두 명까지 이 싸움의 결과로 포로로 잡혔을 정도이니.

 

전차가 아닌 것을 전차로 위장한 것, 그리고 전차가 아닌 것으로 상대로 하여금 전차로 오인하도록 만든 것, 그리고 그럼으로써 전차와 같은 위력을 발휘하도록 만든 것, 이것이 롬멜식의 무중생유였다.

 

 

히틀러 역시 무중생유를 무척 애용했었는데,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를 합병했을 때 빈의 시내에서 독일군의 위세를 보여주고자 거리를 행진하면서, 일단 거리의 끝까지 이동한 부대로 하여금 다시 멀리 돌아 대열의 후미에 붙도록 하는 식으로 독일군의 규모 자체를 실제보다 과장되게 판단하도록 꾸몄었다. 그것은 오스트리아나 독일 자국의 국민만이 아닌 영국과 프랑스 등에 보이기 위한 것이기도 했는데, 그의 의도는 성공해서 실제 그만한 준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음에도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의 군사력을 오판하도록 만든다. 이것은 독일이 외교상에서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는 데 있어 아주 큰 역할을 했다.

 

 

새턴이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과의 경쟁에서 형편없이 밀리게 되자 세가에서는 새턴의 패배를 인정하고 새턴의 실패를 만회하고 차세대게임기 시장을 선점하고자 다른 경쟁사들보다 빨리 드림캐스트를 출시하게 되었다. 당시로서는 경쟁상대가 없다 할 정도의 놀라운 폴리곤 처리능력과 텍스트 압축을 사용하여 이후 나온 게임기들과도 차별되는 풍부하고 화려한 색감의 구현이 가능한 그야말로 꿈의 게임기였다.

 

그러나 드림캐스트의 꿈은 시작도 하기 전에 좌절되고 말았다. 시장에 모습을 나타내는 순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와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플레이스테이션2, 그것도 당시 소니 게임기사업부의 사장이었던 구다라기가 만들어난 허구의 플레이스테이션2였다. 성능이 드림캐스트의 세 배라던가? 소니라고 하는 브랜드파워와 이모션엔진이라는 오해하기 쉬운 이름, 여기에 플레이스테이션이 그동안 쌓아놓은 실적과 신뢰 등이 더해지면서 그러나 구다라기 -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구라까기라고도 부른다 - 의 거짓말은 마치 사실처럼 받아들여졌고, 드림캐스트는 플레이스테션2도 아닌 그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허구의 플레이스테이션2와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드림캐스트는 더 이상 팔리지 않았다. 어차피 조금만 기다리면 그 몇 배의 성능을 지닌 플레이스테이션2가 나올 터인데 굳이 드림캐스트를 사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임기가 팔리지 않으니 게임도 몇 출시되지 않았다. 소니의 독주를 견제하고자 몇몇 메이저 회사에서 대작을 출시해 주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게임기의 판매량 자체가 너무 적었던 터라 새로이 출시되는 타이틀의 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2는 그동안의 언론플레이와는 전혀 동떨어진 성능으로도 플레이스테이션용의 게임과의 호환성과 DVD플레이어라는 강점을 무기로 돌풍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시장을 석권해 버렸고. 결국 회심의 일격으로 준비했던 드림캐스트의 실패로 세가는 게임기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되었다.

 

분명 당시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2의 개발을 완료해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되는 플레이스테이션2의 성능도 구다라기 사장이 말하는 그런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텍스처 처리능력은 플레이스테이션2보다도 엑스박스보다도 더 좋았다. 플레이스테이션2에 비해 폄하될만한 게임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니라는 이름과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실적은 구다라기의 말을 마치 사실처럼 여기게 만들었고, 구다라기의 말 한 마디에 당장 있는 드림캐스트가 아닌 아직 나오지도 않은 플레이스테이션을 더 주목하고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던 세가는 자멸하여 사라졌다.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속이는 무중생유의 정말이지 더럽고 치사한, 그러면서도 매우 효과적인 응용일 것이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몇 년 째 벌어지고 있는 핵무기를 둘러싼 갈등 역시 무중생유의 한 예일 것이다. 북한이야 핵무기가 없어도 있다고 인정받고 싶다. 미국은 북한에게 핵무기가 있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북한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어필하고 싶어하고,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을 애써 무시해 왔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자신들에게 핵무기가 없을 수도 있음을 한 편으로는 넌즈시 흘리고 다녔고, 미국 역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을 가능성에 대해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요체는 뭐냐면 북한이든 미국이든 핵무기를 보유했느냐 보유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을 단정짓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정짓는 순간 이미 그것으로 선택지는 좁아져 버리니.

 

북한으로서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인정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국제적인 입지를 확보할 수 있을 테지만 자칫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자초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난으로 김정일의 권위가 예전같지 않은 상황에 그것은 정권차원의 심각한 위기일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도 북한에 핵무기는 없다고 단정짓고 싶어도 그랬다가는 과거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조건으로 제공하기로 했던 댓가들을 일방적으로 철회한 데 대한 정치외교적인 부담도 부담이려니와 더 이상 북한을 압박할 수단을 잃게 된다. 그것은 남북관계에서 남한을 제어할 수 있는 수단 하나를 잃는다는 것과 같다.

 

이처럼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도 인정하기 싫은 사정으로 저렇게 서로 연막만 피우며 뻥카에 뻥카를 거듭해가며 거리를 재 온 것이 지난 수 년 간의 북한 핵문제의 진행과정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갈등의 결과는 핵무기를 보유했으되 폐기했다라고 하는 모호한 결말로서 끝맺으려 하고 있다. 역시나 해결에 있어서도 어느 한 쪽으로 확정짓고 싶어하지 않는 양쪽의 입장이 담긴 결과라 하겠다. 무중생유와 무중생유, 그 안의 무중생유, 거짓과 거짓과 거짓과 또 거짓이 만난 첨예한 외교전의 현장이라 할 수 있겠다.

 

 

원래 무중생유라고 해서 아주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원래 동양의 사상에서 없고無, 비었고空, 비었다虛 해서 그것이 아주 없고 비어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인지상의 비어 있음이다. 인식에 있어서의 비어 있음이다. 다시 말해 무중생유에서의 무라고 하는 것도 아주 없는 것이 아니고, 유라고 하는 것도 어떤 구체적인 실체가 있어 유가 아니다. 말하자면 불경에서 말하는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것이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에서 거짓인 것을 거짓이 아닌 것처럼, 거짓이 아닌 것을 거짓인 것처럼, 내가 의도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의도하여 스스로 그리 믿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무중생유다.

 

얼핏 상당히 철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거짓말이다. 있는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고,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마디로 그냥 사기다. 상대의 오판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가장 전형적이면서도 가장 비열하고 가장 지독한 사기다. 땅도 없으면서 남의 땅을 자기 땅처럼 속여 상대로 하여금 계약을 하도록 만들어 돈을 뜯어내거나, 돈도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투자를 하는 양 속여서 돈을 받아 내거나, 흔히 정권의 실세나 유력자와 같이 찍은 사진을 가지고 마치 무슨 대단한 관계라도 있는 것처럼 사람 등쳐먹고 돌아다니는 것도 결국은 같은 맥락이다.

 

물론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도 있기는 하다. 아이 몰래 선물을 가져다 주고는 그것을 산타가 주고 갔다고 하는 아버지의 거짓말이나, 명예퇴직한 것이 알려지면 가족들이 충격 받을까봐 계속해서 출근을 하는 것처럼 가족들을 속이는 가장의 거짓말이나, 결국 이런 거짓말들도 계속 반복되면 언젠가는 신용을 잃게 된다. 좋은 뜻도 처음 몇 번이지 그것이 반복되고 언젠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충격과 실망은 더욱 커질 것이고 그로 인한 불신도 깊어지게 된다. 어떻든 거짓말은 하려면 완벽하게 속이던가 그렇지 않을 거라면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중생유 역시 진화타겁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해서든 개인단위에서 함부로 쓸 수단은 아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을 때, 그만한 필요가 있는 상황에, 그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는 자리에서, 무엇보다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고, 들통나도 수습이 가능할 때, 그것도 다른 수단이 전혀 없을 때 쓰는 것이 무중생유의 계책이다. 양날의 칼이라고나 할까? 워낙 현실이라는 게 전장에서와 같이 아군과 적군과 선과 악이 분명하게 나뉘어지지 않으니까. 이를테면 궁극의 계략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래서 그만큼 또 어려워서 지혜로운 자의 지혜롭지 못한 자를 위한 계략이라고까지 일컬어지고 있다. 지혜롭지 못하면 쓰지 못하고, 지혜로운 자에게도 쓰지 못하는 그런 계략이라는 뜻이다.

 

아무튼 그래서 너무 당연하고 너무 뻔하고 그래서 또한 너무 일반적인, 조금 혀를 꼬아서 파퓰러하면서도 스탠다드한 기만의 기본이자 전제, 병법삼십육계의 일곱번째 무중생유다.

 

출처 : 네잎 클로버
글쓴이 : 네잎 클로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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