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스크랩] 산을 제대로 알고 등산을 하자.

kongbak 2010. 11. 10. 09:07

산이란 일차적으로 우리에게 깨끗한 산소와 물을 공급해 주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오염된 공기를 정화 시켜주는 역할을 하지만 모든 산들이 무작정 산소와 물을 공급할 정도로 풍요로운 것이 아니다. 지구의 공기 중에는 산소 유량은 20%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그것도 30%는 남미의 정글에서 나오고 또한 지구의 무한정하게 많은 물들이 모두가 식용으로 공급되는 것이 아니다.


지하수란 원래 지표의 물이 땅속을 통과하다가 불투수층(不透水層)에 막혀 고여 있는 물이다 그런데 지구 곳곳에 무한한 지하수가 존재하지만 모두가 좋은 물이 아니다 지하수는 충적층이나 홍적층의 제4기층이 수질도 좋고 수량(水量) 또한 풍부한 것인데 좁디좁은 땅덩이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층은 그나마 4기층에 속하여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게도 넓은 갠지스와 아마존만 보더라도 갠지스 강은 수많은 사람들이 시체를 화장시킨 더러운 물에 그것을 성수로 여겨 목욕을 하고 마시기도 하며 밀림이 우거져 하늘을 가리는 아마존 강에 흐르는 물이 지구상에 6분의 1을 차지하며 뉴욕시민이 12년 간 생활할 수 있는 막대한 양이지만 혼탁하기 그지없고 아마존 밀림지대는 그 많은 수풀림으로 쌓여 있어 1분당 무려 5억만 톤이나 쏟아 붙는 세계 최고의 폭포인 빅토리아 폭포가 있지만 그것도 지하수 4기층인 삼천리금수강산에 흐르는 우리나라 계곡물만 못하다.


산이 높아야 골이 깊고 골이 깊어야 물이 맑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산들은 그렇게 높지도 않으며 깊지도 않아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산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물이 맑고 깨끗하다.


삼천리금수강산 물이 맑고 산세가 기묘하여 볼거리 풍성한 우리나라 좋은 나라 참으로 좋은 나라 어느 한곳 빼놓을 수 없이 기기묘묘하고 산세가 아름다울 뿐만이 아니라 푸른 하늘에는 흰 구름과 맑은 시냇물은 노래하며 우리를 즐겁게 맞이하며 깊은 산허리는 우리들의 노래에 산울림으로 화답하고 드높은 산 봉오리들은 우리의 함성을 메아리로 되돌려주는 아름다운 우리의 산들.


삼천리 방방곡곡의 골짜기와 벼랑바위에는 철마다 새 옷으로 단장하며 그 웅장함과 화려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길가에 초목들은 푸르름과 활짝 핀 꽃으로 아름답게 치장하여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그야말로 삼천리금수강산이기에 일찍이 고려 말 나 옹 국사가 오대산 미륵 암자에 앉아 속세에 찌들어 권력과 명예에 집착하고 재물에 욕심 많은 인간들에게 산처럼 무소유로 살라고 "청산은 나를 보고"라는 시를 지어 노래한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그렇게 산(山)은 우리에게 정직함을 가르치고 욕심을 없애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들의 부질없는 삶을 질책하며 새롭고 향기로운 인생의 길잡이 역할을 무언으로 알려주는 것이 산이기에 이렇게 산으로 돌아오라고 나옹화상은 손짓을 한다.


고산 윤선도 역시 산(山)이야 말로 우리에게 사계절 철철이 무한한 생명력과 윤회를 일깨워주며 어느 누구도 마다하지 않고  말없이 우리를 묵묵히 반기며 포용해 준다고 노래한다.


잔 들고 혼자 앉아 먼 뫼를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 온다 반가움이 이러하랴

말씀도 웃음도 안 해도 뭇 내 좋아하노라.


이렇게 산을 바라보노라면 세상만사의 욕심이 절로 없어지고 온갖 시기와 질투가 사라지며 인생의 아름답고 진실 된 참다움이 숨겨져 있는 산(山)을 옛 성현들은 유좌지기(有座之器)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유좌지기(有座之器)란 속이 비면 기울어지고 적당하게 물이 차면 똑바로 서고 물이 가득 차면 엎질러진다는 그릇을 말하는데 천하에 성군이었던 환공(桓公)도 항상 유좌지기를 곁에 두고 바라보면서 욕망을 다스렸다 한다.


산은 속이 빈 상태도 아니고 물이 가득 차 있는 상태도 아니다 장마가 지면 넘쳐나는 물을 가득 머금고 가뭄에는 엎질러지듯 내려 보내고 그저 적당하게 물을 머금으며 항상 평행선을 유지해주는 말 그대로 유좌지기(有座之器)인 것이 산이다. 



산은 봄이 되어 새싹을 틔우면서도 욕심을 내지 않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앞뒤를 다투지 않고 순서대로 태어나며 여름에 녹음이 우거져 푸르름이 빛나지만 뽐내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는다. 가을에 홍엽(紅葉)에 물들어 뭇사람들에 시선을 끌지만 자신을 낮추며 겸허하게 반기고 겨울이 되면 삭풍이 몰아쳐도 누구를 탓하지 아니하고 철따라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산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산에 올랐고 지금도 오르며 앞으로도 계속하여 오를 것이다 산에 오르는 것은 관객도 없고 심판도 없고 응원자도 없으며 오로지 자신과의 한판 승부이며 외로운 고독의 질주이다 이렇게 한판승부를 위하여 질주하며 산에 오르는 것은 산을 정복한다는 것 많이 그 이유가 아니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만도 아니며 또한 건강해지려는 것만도 아니다.


산에 오름으로 인생의 참다운 맛과 멋이 함께 숨 쉬는 곳이 바로 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악인들은 말하기를 산에 오를 때는 올라야할 산을 오르기 전에 그 산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올라야 산행다운 산행으로서 자연의 신비와 오묘한 진리가 숨 쉬는 것을 느낀다 했다.


사람들은 오래 살아 보고자 첨단의학도 부족하여 불로장생한다는 약초를 구하며 끈질기고 모질게도 악착같이 살려고 매달리지만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모두가 부질없는 것들이요 오로지 사람이란 산(山)을 앎으로서 장생하고 산을 오름으로서 불로 한다고 산인(山人)들은 말한다.


이렇게 산은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평등하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우리에게 불로하고 장생(長生)토록 해주기에 산을 사랑하고 아끼며 소중하게 보살피는 혜량도 있어야 한다 산에 올라 뜀박질하며 떠들거나 큰 소리로 얏~호 하며 소리를 지르면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산짐승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번식과 성장에 장애를 받아 때로는 기형을 낳기도 하고 터전을 버리고 떠나기에.


우리는 산에 오를 때는 뛰지도 말고 도란도란 속삭이며 왔다가 오순도순 내려가면서 되돌아가는 길은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르트 산은 원래 티베트어로 초모랑마(세계의 여신이라는 뜻)라 불렀으며 이 산을 측량했던 측량국장의 이름을 따서 에베르트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높고 넓은 히말라야의 만년설은 장엄은 하지만 지루하고 열대지방의 녹음은 울창하나 답답하기 짝이 없으며 일출과 낙조를 관망할 수가 없다.


또한 몽블랑이 높은 설산(雪山이기는 하나 그곳에서는 바다를 감상 할 수가 없지만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더라도 산에 오르면 바다를 쉽게 접하여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며 장엄하고 오묘하며 산자수려함을 만끽할 수가 있다.



그렇게 오묘화고 산자수려한 우리나라 산은 지도상에 나와 있는 차령산맥이니 노령산맥 장백산맥.등 명칭은 일제 때 일본사람들이 지하자원을 약탈하기 위하여 산의 줄기마디를 묶어 산맥이라는 명칭을 붙여 교과서에 수록 우리들에게 왜곡된 명칭을 가르쳤다


일찍이 백두대간을 체계화 한 것은 영조 때 신경준의 산경표(山經表)를 보면 산줄기를 도표화하여 산줄기의 굵기로 대간과 정간 정맥을 구분하여 대간은 산과 물줄기에 따라 기후토양을 물론 사람의 품성까지 바뀐다고 하는데 쉽게 말하면 정간과 정맥은 산줄기를 따라 강이 동반되면 정맥. 강이 없으면 정간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면 빨리 이해가 간다.


백두산을 뿌리로 하여 낭림. 금강. 설악. 태백. 속리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산줄기의 거리 1.625km의 한반도 척추를 백두대간이라 하는데. 산줄기의 분수령에 따라 백두대간과(1대간)과 장백정간(1정간) 그리고 13정맥의 산줄기로 이어져 있는데 백두대간은 백두산을 시작으로 금강산을 지나 태백산으로 뻗어 속리산을 지나 지리산까지 뻗어있으며 장백정간은 북쪽에 있는 두만강을 기점으로 함경북도 내륙을 관통하여 다시 두만강 하구에 끝을 맺는다. 


13정맥은 


첫째 청북정맥(靑北正脈)으로 평북 내륙을 관통 압록강 남쪽 울타리를 이루며 웅어수산을 시작으로 갑현령(1.000m) 적유령(964m) 삼봉산(1.588m) 단풍덕산(1.154m)을 지나 온정령(574m)을 끝으로 신의주 남쪽 압록강 하구에서 끝이 나며.


두 번째 청남정맥(靑南正脈)은 청북과 같이 웅어수산을 시작으로 청천강 유역과 대동강 북쪽으로 경계하는 분수령이며 묘향산(1.365m)용문산(1.180m) 서래봉(451m) 강룡산(446m) 만덕산(243m) 광동산(396m)을 지나 대동강 하류로 빠지고.


세 번째 임진북 예성남 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 황해도 북쪽으로 임진강 남쪽으로 예성강의분수령으로 일곱 번째 정맥인 해서정맥의 화개 산을 시작 학봉산(664m) 수룡산(717m) 첨마산(762m) 송악산(488m)을 지나 임진강과 한강의 합치점인 개성의 진봉산(310m)이며.

 

이어서 네 번째 한북 정맥(漢北正脈) 북쪽으로 임진강 남쪽으로 한강의 분수령으로 백봉에서 시작하여 백암산(1.110m) 오성산(1.062m)철책 넘어 포천 백운산(904m) 운악산(936m)서울 도봉산.북한산(837m) 고봉산(208m)지나 장명산(102m)에서 끝이 나고.


다섯 번째 한남 금북 정맥(漢南錦北正脈)한강과 금강을 나누는 분수령으로 속리산 천황봉(1.508m)을 시작 말티 고개 선도산(547m) 상당 산성.좌구산(657m) 보현산(481m) 칠현산(516m)에서 한남과 금북정맥이 갈라지면서 끝난다.


신이 인간을 만들 때 백인종은 익기도 전에 꺼낸 생둥이 이고 흑인종은 너무 오래 익혀 실패작이며 우리민족인 황인종만이 적당하게 구워진 조물주의 합격품이라 한다


미국인(백인)에게서는 노린내가 나고 청나라 사람에게는 되(豚=돼지)냄새가 나듯 한국인은 서양 사람들이 볼 때는 마늘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이것이 고려취(高麗臭)다 즉 고려인에 냄새로서 우리나라는 지리학 상 예로부터 쑥과 마늘을 약초로 알고 조상 대대로 즐겨 먹어 왔기에 다른 종족에서 보면 그러한 냄새가 나는 것이며


이러한 것들은 나라마다 지역마다 문화와 삶이 다르고 음식과 물이 다르고 대간의 정맥이 다르기에 생활습관이나 풍습이 달라서 같은 인종끼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인종에게서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고약하다는 것은 서로가 공통적인 것이다.


풍수지리설에 보면 산자락을 살펴 명당을 보는데 연화부수형이네 금계 포란형(金鷄抱卵形) 즉 금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태가 명당자리라 하는데 평안도 강계는 풍수학상으로 옥녀개화(玉女開花)형으로서 상부에 주산(主山)인 남산 밑에는 여음(女蔭)이요 안쪽은 독산(獨山)으로 남근이라 하여 항상 남산 밑에서는 오수(汚水더러운 물)가 흘러


여인들이 화냥기가 있다고 전해지며 안동을 안고 도는 산은 예로부터 공알(陰核음핵)산이라 하여 그 산에서 샘이 하나 있는데 그 샘물은 하루도 쉼 없이 흐르는데도 냄새를 풍겨 안동 여자들은 음기가 세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동여자들의 음풍(淫風)을 재우기 위하여 남근석을 세 개나 세웠는데 일제시대까지 있었지만 그이야기는 접어두고


다시 정맥을 살피면 여섯 번째로 한남 정맥(漢南正脈) 한강유역과 경기 서해안 지역을 분계하며 칠장산(492m)에서 시작 수원에 광교산(582m)안양 수리산(395m)을 넘으며 김포평야 낮은 등성과 계양산(395m) 가현산(215m)을 지나 강화도 문수산성에서 끝나며.


일곱 번째 해서 정맥(海西正脈) 우리나라 북부와 중부지방 문화권을 경계하고 있는 분수령으로 백두산 두류산에서 시작 서남쪽 개연 산을 지나 다시 북쪽으로 언진 산(1.120m)에서부터 남하 멸악산(816m)을 지나 서해의 장산곶에서 끝난다


이어서 여덟 번째 금북 정맥(錦北正脈) 금강의 북쪽 울타리로 한남정맥과 떨어지는 칠현산(516m) 안성에 서운산 천안에 흑성산(519m) 아산에 광덕산(699m) 청양에 일월산(560m) 예산에 수덕산(495m)을 지나 예산에 가야산(678m)에서 주춤하다 성왕산(252m) 백화산(284m)을 거쳐태안반도의 끝 안흥진에서 끝을 맺는다.


아홉 번째 금남 정맥(錦南正脈) 전주의 마이산(667m)에서 북으로 대둔산(878m) 계룡산(828m)을 거쳐 서쪽 망월산을 지나 부여 조룡대에서 끝나고


열 번째는 호남 정맥(湖南正脈) 12번째인 낙남정맥과 함께 남부 해안권을 경계하며 동쪽은 섬진강 서쪽은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의 분수령으로 11번째인 금남 호남정맥에서 갈라져 강진에 만덕산(762m) 지나 내장산(763m) 추월산(729m) 무등산(1.187m) 제암산(779m) 조계산(884m)등을 거쳐 광양에 백운산(1.218m) 섬진강을 휘감은 망덕산(197m)에서 끝난다.


예로부터 산이란 영험하고 신비스러움이 숨어있고 신(神)적인 마음이 깃든 곳이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아 떠나고 산에 대한 영적인 믿음이 있기에 산에 의지하고 소원을 바라며 산신령에게 제사와 굿으로 치성을 드리며 산은 우리를 말없이 포용하기에 산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아무리 큰소리를 쳐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뿐이다.


 나무를 꺽어도 반응이 없으며 돌멩이를 주워가도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며 그저 인간들이 하는 것들을 포근한 마음으로 묵묵하게 수용하며 겸허한 자세로 지켜만 보는 그것이 바로 산이다. 그렇게 산(山)은 우리들의 심신을 달래주고 피로를 식혀주며 마음에 근심을 달래 주며 포용하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이 산(山)의 임무가 아니다 실로 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이렇게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은 우리들의 삶에 종착역도 역시 결국은 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마 유치환이 행복이란 시에서 산을 예찬하고 우리의 삶의 종지부가 결국은 산을 향하여 가고 있음을 노래한다.


내 아무것도 가진 것 없건마는

머리 위에 항시 푸른 하늘을 우러렀으매

이렇듯 마음 행복 하노라

나종 죽어 서럽잖이 더욱 행복함은

하늘 푸른 고향의 그 등성이에

종시 묻히어 누웠을 수 있음이어라


예로부터 하루가 다르게 문명을 일깨우며 새로운 문명을 개척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던 서양에 비하면 우리는 하루 종일 괭이나 삽으로 일과를 하다 보니 밭갈이 도중에 힘이 부치면 돌부리나 자갈을 걷어차며 화를 삭히고 힘이 들면 밭고랑에 걸터앉아 곰방대를 피워 문채 떠도는 흰 구름을 바라보며 텁텁한 막걸리 한잔에 심사를 달래는 것이 고작이던 우리네 선조들 이었지만 그래도 찌든 삶의 틈바구니 속의 한 모퉁이에서는 산의 멋스러움과 향기를 알았기에 산을 사랑하고 산을 소중하게 여기며 산에 살고 산에 묻히기를 바랬다.


다시 나머지 정맥이야기를 살피면 열한 번째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으로 장수에 영취산(1.076)을 시작으로 장안산(1.237m) 수분현(530m) 팔공산(1.151m) 임실의 성수산(1.059m)진안 마이산(667m) 부귀산(806m)에서 끝이 나고



열두 번째 낙남정맥(洛南正脈) 남부 해안지방을 분계선으로 지리산 영산봉에서 시작 옥산(614m)에서 동쪽으로 대곡산(543m) 여항산(744m) 무학산(763m) 구룡산(434m) 대암산(655m)을 거쳐 낙동강 하구에서 끝난다.


마지막 열 세 번째인 낙동정맥(洛東正脈)은 낙동강의 동쪽을 동해안 울타리로 하는 담장으로 매봉산에서 시작 태백의 백병산(1.259m)통고산(1.067m)울진의 백암산(1.004m) 청송에 주왕산(720m)경주에 단석산(829m) 울산을 거치는 가지산(1.240m)신불산(1.209)그리고 부산에 금정산(802m)을 지나 백양산(642m)을 끝으로 다대포의 몰운대에서 끝을 맺는다.


이렇게 정맥을 따라 분포되어 있는 우리나라 산을 이중환의 택리지는 수많은 산 중에서 12개의 명산을 꼽는데 1.금강산 2.설악산 3.오대산 4.태백산 5.소백산 6.속리산 7.덕유산 8.지리산 9.칠보산 10.묘향산 11.가야산 12.청량산을 들고 있다.


그리고 신악적(神岳的)으로 살펴 해동삼신산(海東三神山)으로는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들었고 오악산(五嶽山)은 1.북악(北嶽)의 백두산 2.남악(南嶽)의 지리산 3.동악(東嶽)의 금강산 4.서악(西嶽)의 묘향산 5.중악(中嶽)의 북한산으로 우리의 산은 위치마다 정기가 서려 있어 산세적(山勢的) 지형적(地形的)으로 우리의 삶과 너무나 흡사하다.


봄이면 처녀를 상징하기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무한한 가능성을 말해주고

여름이면 어머니를 상징하는 푸르름이 무성하여 다함이 없는 생명력을 보여주고

가을이면 미망인을 상징하여 형형 각색의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고 쓸쓸한

겨울이면 계모의 뜻을 상징하듯 살벌한추위 하얀 눈으로 쌓인 산야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다 처녀의 부푼 꿈과 어머니의 모성애 그리고 미망인의 허무함과 계모의 야박함을 피부로 절실히 느껴보는 것이 우리나라의 사계절 산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뒤지지 않는 금강산은 수이불장(金剛山 秀而不壯)이라 하여 산세가 수려하기는 해도 장엄한 맛이 없는 여자다운 산(山)이라서 금강산 권의 사람들은 삶에 굴곡이 없으며 평온한 성품의 삶이 존재하고.


설악산은 곡이역수 (雪嶽山 谷而亦秀) )라 남자다운 산이라 웅장하기는 하나 수려함이 없는 장엄한 듯 굴곡이 화려하나 수려하지 못하여 사람들은 삶의 윤곽이 뚜렷하고.


지리산은 장이불수(智異山 壯而不秀)라 역시 남자의 산이라 장엄하나 수려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애환이 깃들어 있고 커다란 삶의 냄새가 물씬하며.


백양과 내장산은 온이역수(白羊.內藏山 溫而亦秀)라 산세가 온화함을 안으로 품으며 빼어난 아름다운 여성스런 산으로 이 고장 사람들은 훈훈하고 후덕한 인심의 내음이 묻어나는 삶을 살고 산세가 온화함을 안으로 품으며.


묘향산은 장이역수(妙香山 壯而亦秀)라 장엄하고 수려하며 기개가 있으며 평화로움이 있는 삶을 살며 산세가 오밀조밀한 등성이를 이루는 계룡산과 칠갑산 권 사람들은 여유와 한가로운 틈이 새어나오는 삶을 살아간다.


애환과 전설을 품고 있는 치악산 권에는 그들 만에 속내를 감추는 듯한 삶을 살며 웅장한 듯 수려한 듯 용트림하는 월악산 권에는 웅대한 포부를 펼치려는 듯 조용한 가운데 기개가 있는 삶이 엿보이며 산세가 아름답고 산자수려한 자태를 뽐내는 가지산 권 사람들은 온화한 성품에 아량이 있는 삶을 살듯이 그곳의 음식 맛에 따라 지리적 환경과 여건에 따라 그 고장의 소중한 문화적이고 전통적인 체험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류에 산마다 나름대로 특성이 있어 금강산의 봄에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하다 하여 말 그대로 금강산(金剛山)이라 부르고 여름에는 만산녹음(滿山錄音)하고 쑥이 무성하다해서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산 전체가 온통 단풍으로 붉게 물들어 단풍의 장관을 이루기에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새하얀 뫼 뿌리가 서릿발 같고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앙상한 가지가 뼈만 남은 산으로 백골을 방불케한다하여 개골산(皆骨山)이라 부르며 상악골(上顎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산은 무한한 것들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또한 우리의 애환과 영혼을 달래주고 찌들어 가는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구세주다 유럽에 이스라엘 민족의 원한이 예루살렘의 벽에 한을 풀어주는 통곡의 벽이 있다면 우리에게도 강원도 영월군 서면 신철리 각란정(覺瀾亭)아래에 있는 "아이고" 바위가 있다.


여기가 통곡의 벽으로 세조 때 생육신의 한사람인 원호(元昊)라는 선비가 단종이 영월에 유배당하자 이곳에 와서 정자를 짓고 이 통곡의 바위에 조석으로 앉아서 아이고를 외치며 통곡하였던 것이 유래가 되어


사람들이 억울한 일이 있으면 이곳에 모여 "아이고""아이고"하며 통곡을 하였다 원주 부론면 법천 남한강가에도 한숨 바위가 있어 이 바위에 올라서서 한숨을 쉬면 관가에 잡혀갔다 하는데 영월에 아이고 바위나 원주의 한숨바위나 모두가 부녀자의 시집살이나 민초들의 억울하고 참담했던 시절 한을 풀지 못하여 이런 곳에 목줄에 핏대를 세우며 통곡을 함으로서 한이 서려있던 마음이 조금이라도 내려가는 스트레스 해소책이나 다름없다.


산이란 영험하고 신비스러움이 있기에 영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산에 대하여 의지하고 소원을 바라며 제사를 굿을 지내지만 굿이나 제사를 지내는 방법과 일시. 그리고 고장의 풍습마다 다르지만 산(山)제사를 지낼 때는 뭐니뭐니해도 산신령에게 먼저 예를 올리며 믿음과 신앙의 제사와는 별도로 산을 즐기고 사랑하는 등산 동호회에서는


첫 해 첫 날에 또는 등산의 마지막 달인 12월에 항상 등산제를 지내는데 산은 예로부터 우리에게 영험하고 신(神)적인 마음이 깃든 곳이기에 자식 잘되라고 가족 건강하라고 과거보러 떠난 낭군 장원급제하라고 산행에 다치지 말고 무사히 완주하라고 모든 것들의 바람은 산신령이 주관하기에 우리는 산에서 기도를 드리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옛날에 선비 두 사람이 아래윗집에 살았는데 젊어서 과거시험을 치른 후부터 무심(無心)과유심(有心)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는데 그 사연은 이렇다 그들은 똑 같은 날 과거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는 조바심에 점술가를 찾아가서 점을 처 보았다.


아랫집에 사는 선비한테 먼저 무심코 아무글자 하나 써 보라고 하자 그는 관(串)이라는 글자를 써서 점술가에게 주자 점술가는 참으로 좋은 글자요 만약 과거시험을 보면 장원 급제를 할 것이며 무슨 시험이든 보기만 하면 또 한 번 급제할 팔자라 한다. 사연인즉 아랫집에 사는 선비가 써준 관(串)자는 맞힐 중(中)자를 두 개나 포개져 있으니 두 차례 시험을 무난하게 급제할 것이요 그랬다


다음에는 윗집 선비에게도 써 보라 했는데. 윗집선비는 아랫집 선비의 글자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그도 슬그머니 똑같이 써 주었다 그랬더니 점술가의 하는 말이 당신은 급제는커녕 병에 걸릴 팔자라 한다 부아가난 선비는 어째서 똑같은 글자인데 그렇게 틀리느냐고 항의를 하자 점술가의 답변이 방금 저 사람이 쓴 글자는 그냥 무심히 관(串)자를 쓰기에 원래의 뜻대로 점괘가 나오지만 당신은 저 사람의 글씨를 유심히 처다 보고 썻기에 그러합니다.


생각해 보시오 관(串)자에 유심(有心)히 바라보다가 썻으니 즉 마음(心)이 들어 있으니 그 글자인 관(串)자 밑에 마음 심(心)자가 합해지니 근심할 환(患)자가 되는 것이요 그러니 걱정이 따를 수밖에 없오 그 후로 과연 아랫집 선비는 과거에 합격하였는데 윗집 선비는 낙방에 질병까지 얻어 한동안 고생을 해야 하였다


이 소문이 온 마을에 퍼져 아랫집 사람은 무심코 글을 써서 장원하여 무심(無心=마음이 없음)이라 하고 윗집사람은 아랫집 사람의 글자를 유심(有心=마음이 들어있음)히 처다 보다가 써서 과거에 낙방도 하고 병을 얻어서 유심(有心)이라 불렀다 한다.


그래서 산을 오를 때는 마음을 비우고 무심히 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산을 올라야하지 마음을 비우지 않고 유심이 처럼 온갖 잡념을 가지고 산에 오르면 더욱 커다란 근심이 찾아 들며 질환이 뒤따르고 마음에 고통이 뒤따르기에 잡념을 버리고 산세에 깃들어 있는 오묘함과 우리에게 주는 어떠한 영험하고도 암시적인 그 무엇을 향하듯 조심스레 고마움을 느끼며 산을 올라야 한다.


출처 : 4804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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