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는 기본적으로 창의적인 활동이다. 과학연구의 규모가 커지면서 조직이나 연구행정의 측면이 과거에 비해 중요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과학자들의 연구의욕을 고취하고 창의적인 발상을 자극할 수 있는 과학자를 이끌어가는 과학지도자의 리더십이 여전히 중요한 요소다.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과학자들은 자신이 속한 국가, 기관, 분야에서 과학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공통의 결과를 보여준다. 또 전부는 아니더라도 이들 대부분은 스스로가 뛰어난 업적을 이룩한 사람들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연구내용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기 힘들고, 재능있는 다른 과학자들을 이끌어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정치권의 후원이나 정치권력 같은 과학 외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한 경우, 학계의 제도적 수단을 장악한 경우, 감동할 만한 인간성을 소유했거나 다른 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재주를 가진 경우, 연구비 운영이나 새로운 주제 발굴 등 연구행정 능력이 뛰어난 경우 등 다양하다.
나폴레옹 1세가 정권을 장악했던 시기에 프랑스 과학은 내용과 제도면에서 모두 유럽 최고의 수준에 올랐다. 새로 설립된 에콜 노르말과 에콜 폴리테크닉에서는 수준높은 교육이 이뤄졌고, 유능한 과학자들이 대접받고 정부의 고위 관료가 되는 일도 흔하게 일어났다. 이 시기 프랑스 과학에서 가장 두드러진 지도자는 피에르-시몬 마퀴 디 라플라스(1749~1827)다.
라플라스는 뉴턴이 제기한 고전역학의 원리를 천체에 적용하는 영역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그의 ‘천체역학’은 고전 천체역학의 집대성이다. 더 나아가 천체뿐 아니라 모든 자연현상이 밀고 당기는 뉴턴식 힘에 의해 설명된다는 기본입장을 가진 라플라스는 이러한 원리에 입각한 과학을 널리 발전시키고자 했다.
사교력과 정치력도 뛰어났던 라플라스는 나폴레옹 1세의 신임을 받아 내무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과학기술을 새시대의 이념으로 생각한 나폴레옹 1세는 과학의 강력한 후원자가 됐다. 나폴레옹의 지원을 등에 업은 라플라스는 에콜 폴리테크닉의 장래가 촉망되는 졸업생들에게 개인적인 후원을 베풀면서 과학 연구를 조직화했다.
우주인들도 정치에 뛰어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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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아폴로 13'의 한 장면 | 라플라스는 학사원에서의 지위를 이용해 현상공모 문제와 심사위원회 구성을 장악하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갔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재능있는 평민 출신이 출세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중 하나가 프랑스 학사원의 현상공모에 당선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라플라스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유능한 젊은이들이 그의 이념에 동조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능력있지만 다른 입장을 택한 과학도들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라플라스의 강력한 리더십은 결과적으로 단기간에 프랑스의 정밀 수리과학을 높은 수준에 올려놓는 초석이 됐다.
우주비행사 중에도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인 테레슈코바는 1967년 옛소련의 최고위원회 위원으로 선정됨으로써 우주비행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정치인이 됐다. 미국인 최초로 궤도비행에 성공한 존 글렌은 1974년 오하이오주에서, 아폴로 17호를 탔던 해리슨 슈미트는 1976년 뉴멕시코주에서 상원의원이 됐다.
1970년 아폴로 13호로부터 성공적으로 귀환한 승무원 중에는 잭 스위가트(영화에서는 캐빈 베이커가 그 역을 맡음)가 있었다. 그는 다른 13호의 승무원처럼 다시 우주로 나가지 못했지만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1982년 콜로라도주에서 상원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그는 그해 12월에 암으로 죽고 만다. 현재 미국 국회의 중앙홀 입구에는 그의 동상이 있다.
<이은경의 ‘탁월한 리더십 발휘한 과학자 베스트5’, 정홍철의 ‘에피소드로 본 우주시대’ 기사 발췌 및 편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