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인을 위한 철학논쟁 - 내가 아는 것이 진리인가 / 엮은이:김창호 / 펴낸이:백석기
3장 사회 및 역사 철학
인간의 소외, 어디에서 오는가 - 서도식
소외는 우리가 느끼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객관적인 현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상황이 사람들의 의식에 반영되어 나타나는 것인가, 혹은 각 개인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심리 상태에 다름 아닌 것인가?
현대에 확대되고 심화된 소외 현상
우리는 일상적으로 무언가로부터 고립되어 있을 때 소외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를 소외시킨 그 무언가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돈이 없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았다 하더라도 친구들이 나를 소외시켰다고 이야기하지 돈이 그렇게 했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즉, 나를 소외시킨 주범은 친구들, 정확히 말하면 친구들의 나쁜 품성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소외된 사람들, 이를테면 가진 것이 없다거나 피부색이 다르다거나 혹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버림받은 사람들도 결국은 그들을 버린 사람들이 나빠서 그렇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소외의 주범은 다른 곳에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내가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다면 돈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 친구가 되지 못한다는 말은 친구 관계가 돈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냉대 받는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이유에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가부장적 권위를 정당시하는 사회 제도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모든 인간 관계를 파고들면 그 속에는 무언가 인간 관계가 아닌 어떤 것이 인간 관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 결과 소외 문제가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 소외의 주범은 인간이 아닌 어떤 비인간적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비인간적인 관계는 자연의 산물도 아니요, 신이 부여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순전히 인간이 만든 것이다.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능동적으로 삶을 살아간다. 예로부터 인간은 자연의 혜택을 있는 그대로 누려 온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적극적으로 개척하면서 살아왔다. 그 결과 과학 기술은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사회 조직과 정치 및 경제 제도, 사상 체계 등이 나타났으며, 이것들은 나름대로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만든 것들이며, 인간의 삶을 위해 봉사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우리 인간이 산출한 모든 것들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것들은 인간의 손을 벗어나 인간에게 낯선 것이 되었으며, 스스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서 도리어 인간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은 자동화된 기계의 부속품이 되었고, 거대한 관료 조직의 원자가 되었으며, 스스로 하나의 상품이 되었고, 사상의 노예가 되었다. 인간이 산출한 것들이 인간의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이 그것들의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현대 사회에서의 소외 문제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소외,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자기 소외란 '인간의 물질적, 정신적 활동에 의해 산출된 모든 것들이 인간에게 낯선 존재가 되어 도리어 인간을 지배하는 힘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의미를 지닌 소외 현상은 현대에 이르러 거의 모든 인간 관계에 걸쳐 확대되고 심화되었다. 소외는 이제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든 많은 사람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노인이든 청년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되어 버렸다. 소외 문제는 특정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닌, 현대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가 된 것이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서 볼 수 있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소외 현상들은 바로 그러한 보편적인 문제가 서로 다른 양상을 띠고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객관적 상황으로 존재하는 소외
지금까지 말한 대로 인간이 모든 비인간적인 것들에 의해 인간 관계가 지배되는 현상을 소외라고 한다면, 소외는 우리가 그렇게 느끼든 느끼지 않든 하나의 객관적 상황이요 사회적 사실이다. 사람들이 소외감을 가지는 것은 소외의 객관적 상황이 사람들의 의식에 반영되어서 나타난 결과이지 그것 자체가 소외를 유발하는 원인은 아니다. 현대 소외론의 고전적인 형태라 할 수 있는 마르크스의 이론과 이를 따르는 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체로 이런 입장에 서 있다. 우선 이들에게는 하나의 분명한 역사 철학이 있다. 역사는 인간이 소외되기 이전의 상태에서 소외된 상태를 거쳐 종국에는 소외를 극복한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다. 소외 무제는 역사의 한 특수한 시기에 발생하는 사회적인 상황이며, 다가올 미래에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소외 논의는 그 성격상 실천적일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 이론을 비교적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은 현대 사회에서 인간 소외를 야기하는 주범을 자본주의 경제 제도에서 찾는다. 이들에 따르면 소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버림받은 상태에 있는 노동자 계급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며, 소외의 극복 또한 이 계급들의 역사적 임무로 설정되어 있다. 현대 소외론의 효시가 된 루카치의 사물화 이론은 바로 이 입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에 대립하는 인간의 노동
루카치(G. Luckacs)에 따르면 사물화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으로 인간의 행위, 특히 인간의 노동이 자신에 대립하는 객관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사물화는 인간으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사물 세계의 탄생을 의미하며, 인간의 노동이 사회의 객관적 법칙에 종속되어 거꾸로 그 법칙의 지배를 받는 대상으로 전락하는 현상이다. 루카치가 보는 자본주의 사회는 상품 생산이 전면적으로 관철되는 사회이다. 상품은 인간 노동의 산물이 교환 과정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며, 그것의 가치는 인간의 욕구를 직접 충족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값으로 다른 물건과 교환되느냐에 달려 있다. 상품이 갖는 이러한 추상적인 성격은 인간의 노동에도 반영되어 인간 노동을 둘로 쪼개 버린다. 원래 인간의 노동은 스스로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생산물을 만드는 활동이었으나, 이제는 오로지 교환만을 위해 상품을 생산하는 활동이 되었다. 인간 개개인은 무엇을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만큼의 가치를 갖는 상품을 생산하느냐에 따라 서로 구별된다. 이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상품화요, 인간 관계가 사물 관계로 전락한 것이며, 결국 주체성의 상실이요 자기 소외이다. 루카치는 마르크스를 따라 소외 극복의 방안으로 여전히 노동자 계급의 각성과 실천을 모색한다. 모든 사람의 의식이 사물화된다는 주장은 사실상 현대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 의식의 사물화 현상을 경고하는 것이며, 나아가 노동자 계급이 계급 의식을 일깨워 사물화 현상을 파괴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소외가 극복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현대 마르크스주의자들 가운데는 루카치처럼 소외의 원천을 자본주의자 사회의 경제 법칙에만 국한시키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호르크하이머(M. Horkheimer), 아도르노(T.W. Adorno), 마르쿠제(H. Marcuse) 등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한 부류인 비판 이론가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소외라는 용어를 현대 사회에 유행시킨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