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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의 건강비법 ‘활인심방’을 번역한 정숙(鄭淑·74)씨. 1965년부터 40년 가까이 ‘양생’을 연구해온 그녀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형형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경락진단치료’ ‘양생도인법’ ‘활인지압전서’ ‘생명경영학’ 등의 저술은 그녀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퇴계 건강 사상의 요체는 치심(治心)입니다. 마음을 바로해서 정신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의 요결이란 것이지요.
퇴계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불을 생각하고 있으면 몸이 더워지고 얼음을 생각하고 있으면 몸이 차진다’고 했습니다. 무서워서 살이 떨리는 것이나, 놀라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화가 나 얼굴이 붉어지는 것 등은 모두 마음에서부터 생겨나는 현상이란 이야기죠. 따라서 질병을 다스리려면 반드시 먼저 마음을 다스려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퇴계는 ‘태식(胎息)호흡’을 권했습니다. 태식호흡이란 태아가 배꼽으로 숨쉬는 것처럼, 하복부를 이용해 느리고 길게 호흡하는 것을 말합니다. 숨을 들이마시면서는 우주의 새로운 기운을 함께 받아들이고 숨을 내쉬면서는 몸 속의 낡은 기운을 함께 토해내는 것이지요.”
“선비였던 아버님으로부터 한학과 한의학을 배웠다”는 정씨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74년. 일본에서 귀국한 영왕비 이방자 여사가 성모병원에서 맹장수술을 받게 된 것이 계기였다. “수술을 받은 여사께서 소변을 보지 못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한동안 여러 군데의 ‘경락(經絡)’을 꾹꾹 눌러드렸어요. 그랬더니 곧바로 소변을 보시는 겁니다. 의사도 깜짝 놀라더라고요. 여사께서 좋아하시면서 ‘현대의학에만 의지하면 안되겠다’고 하시더군요. 그 일을 계기로 해서 1988년 여사가 돌아가실 때까지 15년간, 일종의 주치의 역할을 했습니다. 1978년엔 여사를 모시고 유럽 7개국을 함께 순방하기도 했었습니다.” 정씨가 퇴계의 ‘활인심방’에 관심을 갖게 된 또 다른 이유는 퇴계 역시 ‘경락’을 중시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경락이란 기(氣)가 흐른다는 체내의 통로. 활인심방에는 현대의 요가와 유사한 ‘도인법(導引法)’이란 체조<상자기사 참조>가, 그림과 함께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퇴계는 활인심방에서 “(태식호흡과 함께) 꾸준히 이 체조를 하면 경락이 질병이 사라지고 선도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83세 남편과 매일 경락 마사지 정씨의 ‘양생’ 덕분일까? 얼핏 보기에도 정씨 부부의 건강은 무척 좋아보였다. 정씨의 남편은 광복회 회장으로 있는 김우전(83)씨. 팔순을 넘긴 나이답지 않게 요즘도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23세였던 1944년 일제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 상하이 임시정부를 찾아가 김구 선생의 기요비서(機要秘書)를 맡았었다고 한다. ‘기요비서’란 국내 파견 임무를 맡은 일종의 밀사. 정씨는 “1945년 나라가 해방돼 남편이 국내에 파견되진 못했다”고 했다. 정씨는 현재 자녀들을 분가시키고 남편과 단둘이 살고 있다. 그는 부부의 건강 비결에 대해 편안한 마음과 태식호흡 그리고 경락체조를 꼽았다. “요즘에도 아침마다 집앞 공원에서 활인심방 체조를 합니다. 잠자기 전엔 남편과 둘이서 서로의 경락을 마사지해 주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편안하게 갖는 것입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포기할 것은 포기할 줄 아는 생활자세 그리고 항상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범진 주간조선 기자(bomb@chosun.com)
“퇴계 건강법의 또 다른 특징은 자연의 흐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퇴계는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고 해가 뜨면 자리에서 일어나며 계절에 맞는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요즘엔 한겨울에도 딸기며 수박이 나오지 않습니까? 햇볕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온실서 자라난 이런 먹거리들은 정기(精氣)가 충만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정기가 부족한 음식을 자꾸 먹게 되면 정기(情氣=정력) 역시 떨어지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