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學산책
수학자, 프로그래머, 해군제독, 그레이스 호퍼
kongbak
2006. 7. 22. 14:51
수학자, 프로그래머, 해군제독, 그레이스 호퍼
요약
Grace Murray Hopper. 1906년 생.
컴퓨팅 역사상 가장 지대한 업적을 남긴 여성이자,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해군제독. 상업적으로 가장 거대한 성공을 거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코볼(COBOL)을 탄생시키고 보급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컴퓨터 버그"의 단어를 만든 장본인.
사실들
아버지는 병 때문에 다리를 모두 잘라낸 장애인이었음. 그러나 진취적인 사고의 소유자였던 아버지는 여성도 남자 못지않게 교육을 받아야 하며 수동적인 삶을 사는 구식 여성이 아닌 진취적 여성이 되야 한다고 가르침.
17살의 나이에 대학에 진학. (당시엔 여자가 대학을 가는 일조차 흔치 않았음.)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이후 예일대 대학원에 진학해 수학 박사학위까지 취득.
23살에 교육자인 빈센트 호퍼(Vincent Foster Hopper)와 결혼을 하고 대학 강사로 취업. 그러나 결혼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고, 2차세계 대전에 발발하기 전 둘은 이혼. 자식을 두지 않았던 그레이스 호퍼는 이후 재혼하지 않았고, 전 남편이 사망한 뒤에도 계속 호퍼라는 성을 유지.
대학 강사로 일하던 호퍼는 2차 대전 일본의 진주만 폭격이 있은 후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해군에 자원 입대. 당시 호퍼의 나이는 34이었고, 몸무게는 50kg도 나가지 않는 매우 왜소한 체격이었음. 해군에서는 체중 미달을 이유로 입대를 거부했지만, 호퍼는 포기하지 않고 정부 측에 소송까지 내며 입대를 위한 몸무게 제한 취소판정을 받음. 그리하여 1943년 마침내 해군 소위로 임관.
수학자였던 호퍼는 곧바로 미 해군 산하의 연구소에 배치 받음. 이곳에서 컴퓨터를 처음 접하고 프로그래밍에 눈뜨게 됨. 미 해군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연구소 직원들은 하버드 마크(Harvard Mark) I이라는 컴퓨터를 제작.
이후 연구진들은 컴퓨터의 성능을 개량해 하버드 마크 II를 제작. 마크 II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버그"를 탄생시킨 기계였음. 1945년 어느날 저녁, 그레이스 호퍼가 마크 II에서 프로그래밍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계의 작동이 멈추었다고 함. 문제의 원인은 컴퓨터 기기 내부로 날아든 나방이었음. 창문 밖에서 날아든 나방은 마크 II의 시스템 안으로 들어와 컴퓨터에 고장을 일으켰고, 호퍼는 이 나방을 수거해 기록에 남기고 이 나방을 최초의 "컴퓨터 버그(bug: 벌레)," 그리고 나방을 제거한 것을 "디버깅(debugging)" 작업이라고 보고함. ("버그"와 "디버깅"이란 말은 이미 에디슨 시절부터 기계의 사소한 고장과 수리를 가리켜 쓰이던 단어였지만, 컴퓨터에 쓰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음.)
세계 최초의 "버그"와 "디버깅" 작업에 관한 기록
하버드 연구소에서 최첨단 컴퓨팅 기술과 프로그래밍 지식을 쌓은 호퍼는 사실상 업계 최초의 직업 여성 프로그래머가 됨.
1952년, 컴파일러(compiler)의 개념을 최초로 정의한 "컴퓨터의 교육(The Education of a Computer)"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 이후 약 40여년 동안 컴퓨터 프로그래밍 작업을 더 쉽고 효율적으로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함.
1959년, 펜타곤과 다수의 컴퓨터 제조업체들은 비즈니스용 프로그래밍 언어, COBOL(Common Business Oriented Language: 코볼)을 완성. 컴퓨터의 상업적인 이용도를 높이기 위해 개발된 코볼은 누구나 쉽게 배우고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컴파일러를 통해) 어떤 종류의 컴퓨터 하드웨어에서도 작동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프로그래밍 언어였음.
코볼은 그 후 20년간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정착돼,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소프트웨어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게 됨. 코볼이 이런 성공을 거둔 데에는 호퍼의 노력이 컸음. 호퍼는 기업과 정부 기관을 직접 찾아 다니며 코볼의 효율성을 알렸고, 그들이 코볼을 "표준" 프로그래밍 언어로 사용하도록 설득함.
미 해군의 컴퓨터 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와 변함없는 군에 대한 충성에 감복한 미 해군과 정부는 1983년 대통령 특별지시로 호퍼를 해군제독으로 특진 시킴. 호퍼의 특진은 미 해군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해군제독의 탄생을 의미함. 또한 호퍼는 1986년 80세까지 군에 복무함으로써 미 해군 역사상 가장 많은 나이에 전역한 사람으로 기록됨.
호퍼는 (당시 선거권도 주어지지 않았던) 여성이었던 데다, 대단한 집안 내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출중한 외모를 타고난 것도 아니던 데다, 비범한 천재성을 보인 인물도 아니었음. 이 왜소한 체격의, 그저 그런 배경의 여성이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순전히 본인의 의지와 노력 때문이었음.
요약
Grace Murray Hopper. 1906년 생.
컴퓨팅 역사상 가장 지대한 업적을 남긴 여성이자,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해군제독. 상업적으로 가장 거대한 성공을 거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코볼(COBOL)을 탄생시키고 보급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컴퓨터 버그"의 단어를 만든 장본인.
사실들
아버지는 병 때문에 다리를 모두 잘라낸 장애인이었음. 그러나 진취적인 사고의 소유자였던 아버지는 여성도 남자 못지않게 교육을 받아야 하며 수동적인 삶을 사는 구식 여성이 아닌 진취적 여성이 되야 한다고 가르침.
17살의 나이에 대학에 진학. (당시엔 여자가 대학을 가는 일조차 흔치 않았음.)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이후 예일대 대학원에 진학해 수학 박사학위까지 취득.
23살에 교육자인 빈센트 호퍼(Vincent Foster Hopper)와 결혼을 하고 대학 강사로 취업. 그러나 결혼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고, 2차세계 대전에 발발하기 전 둘은 이혼. 자식을 두지 않았던 그레이스 호퍼는 이후 재혼하지 않았고, 전 남편이 사망한 뒤에도 계속 호퍼라는 성을 유지.
대학 강사로 일하던 호퍼는 2차 대전 일본의 진주만 폭격이 있은 후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해군에 자원 입대. 당시 호퍼의 나이는 34이었고, 몸무게는 50kg도 나가지 않는 매우 왜소한 체격이었음. 해군에서는 체중 미달을 이유로 입대를 거부했지만, 호퍼는 포기하지 않고 정부 측에 소송까지 내며 입대를 위한 몸무게 제한 취소판정을 받음. 그리하여 1943년 마침내 해군 소위로 임관.
수학자였던 호퍼는 곧바로 미 해군 산하의 연구소에 배치 받음. 이곳에서 컴퓨터를 처음 접하고 프로그래밍에 눈뜨게 됨. 미 해군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연구소 직원들은 하버드 마크(Harvard Mark) I이라는 컴퓨터를 제작.
이후 연구진들은 컴퓨터의 성능을 개량해 하버드 마크 II를 제작. 마크 II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버그"를 탄생시킨 기계였음. 1945년 어느날 저녁, 그레이스 호퍼가 마크 II에서 프로그래밍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계의 작동이 멈추었다고 함. 문제의 원인은 컴퓨터 기기 내부로 날아든 나방이었음. 창문 밖에서 날아든 나방은 마크 II의 시스템 안으로 들어와 컴퓨터에 고장을 일으켰고, 호퍼는 이 나방을 수거해 기록에 남기고 이 나방을 최초의 "컴퓨터 버그(bug: 벌레)," 그리고 나방을 제거한 것을 "디버깅(debugging)" 작업이라고 보고함. ("버그"와 "디버깅"이란 말은 이미 에디슨 시절부터 기계의 사소한 고장과 수리를 가리켜 쓰이던 단어였지만, 컴퓨터에 쓰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음.)
세계 최초의 "버그"와 "디버깅" 작업에 관한 기록
하버드 연구소에서 최첨단 컴퓨팅 기술과 프로그래밍 지식을 쌓은 호퍼는 사실상 업계 최초의 직업 여성 프로그래머가 됨.
1952년, 컴파일러(compiler)의 개념을 최초로 정의한 "컴퓨터의 교육(The Education of a Computer)"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 이후 약 40여년 동안 컴퓨터 프로그래밍 작업을 더 쉽고 효율적으로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함.
1959년, 펜타곤과 다수의 컴퓨터 제조업체들은 비즈니스용 프로그래밍 언어, COBOL(Common Business Oriented Language: 코볼)을 완성. 컴퓨터의 상업적인 이용도를 높이기 위해 개발된 코볼은 누구나 쉽게 배우고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컴파일러를 통해) 어떤 종류의 컴퓨터 하드웨어에서도 작동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프로그래밍 언어였음.
코볼은 그 후 20년간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정착돼,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소프트웨어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게 됨. 코볼이 이런 성공을 거둔 데에는 호퍼의 노력이 컸음. 호퍼는 기업과 정부 기관을 직접 찾아 다니며 코볼의 효율성을 알렸고, 그들이 코볼을 "표준" 프로그래밍 언어로 사용하도록 설득함.
미 해군의 컴퓨터 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와 변함없는 군에 대한 충성에 감복한 미 해군과 정부는 1983년 대통령 특별지시로 호퍼를 해군제독으로 특진 시킴. 호퍼의 특진은 미 해군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해군제독의 탄생을 의미함. 또한 호퍼는 1986년 80세까지 군에 복무함으로써 미 해군 역사상 가장 많은 나이에 전역한 사람으로 기록됨.
호퍼는 (당시 선거권도 주어지지 않았던) 여성이었던 데다, 대단한 집안 내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출중한 외모를 타고난 것도 아니던 데다, 비범한 천재성을 보인 인물도 아니었음. 이 왜소한 체격의, 그저 그런 배경의 여성이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순전히 본인의 의지와 노력 때문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