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한자 공부 - 삼일신고

kongbak 2012. 9. 17. 13:31

재미 삼아 대종교 경전이라는 삼일신고를 찾아 봤다. 남이 번역한 내용을 읽지 않고 자기가 직접 원문을 읽을 수 있도록 한자 바로 아래 독음과 뜻을 적어 놓았다. 어떤 의미인지는 본인이 직접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천부경 읽을 때보다는 내용이 쉽게 해석이 된다. 대종교 경전은 역사적으론 일제시대에 우리 앞에 출현한다. 대종교 주장에 따라 1만년 이상 된 내용인지는 알 수 없다. 내용을 보면 당시 일제시대과학이 밝힌 것과 서양 개독교와 동양 도교, 불교적인 내용이 혼합되어 있다.(^^)

 

 


그럼 감히 삼일신고를 해석해 보겠다. 앞 부분은 개독 경전의 창세기와 별로 다른 느낌이 들지 않는다. 또한 현대 과학에서 배운 내용도 있다. 창세기와 현대 지구 과학을 결합해 놓은 것 같다. 나는 마지막 수련 부분에 관심이 있다. 기(氣) 수련은 도교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도교 하면 도덕경이 유명하지만 도덕경에도 기에 대해선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아마도 기는 도교와 관계 없는 별도의 계통인 것 같기도 하다. 불교에선 기 수련이란 것이 없다. 기라는 단어도 없기 때문이다. 내용을 보면 소리나 기로는 신을 만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기 수련이나 소리를 내는 주문, 찬송, 기도 같은 것으로는 신을 만날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이 내용은 입 닥치고 조용히 참선만 하는 불교 쪽의 주장 같다.(^^) 불교에서 하는 얘기와 비슷하다.


<성/명/정 : 심/기/신 : 감/식/촉>의 3개 단어 대응이 있다. 옛 사람들이 인간은 마음(心)이 있어서 느낀다(感)라고 생각했고, 이놈은 성품(性品), 성격(性格), 성질(性質)이라고 불리는 본성(本性)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과 사물이 타고난 성질이 있는데 이 성질에 따라 각자 다른 짓을 하는 것뿐인데 사람들이 임의로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죄가 되지만 호랑이가 사람을 죽이는 것은 호랑이의 본성에 따른 것이다. 죄라고 할 수 있는가? 선악은 사람의 마음 속에서만 존재한다. 선악이란 이 세상에는 없다. 나머지 단어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숨쉬는(息) 공기(氣)가 수명(命)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단전호흡에선 숨을 천천히 쉬면 오래 살고 짧게 쉬면 일찍 죽는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기(氣)라는 것은 기체(氣體), 공기(空氣)에서 말하는 그것이다. 우주의 상태는 기체가 없기 때문에 진공(眞空:진짜 비었다)이라고 한다. 우리의 몸(身)이 다른 사물과 접촉(觸)하며 이것의 본질이 정액(精液:잠지에서 나오는 액체), 정력(精力:육체의 에너지/성적인 에너지), 정미(精米:쌀가루)에서 보이는 희고(깨끗하고) 고운 것(精)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자의 불알을 까서 정액 생성이 되지 못하면 그 보상으로 덩치가 커진다. 그래서 내시는 덩치가 크다. 반대로 유명한 바람둥이는 몸집이 작고 불알과 고추가 크다. 육체 노동이나 무술 실력이 중요한 옛날에는 육체가 건강한 것이 바로 귀하게 되는 것이다.


읽어 보면 당연한 얘기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린 각자의 성격에 따라 자기의 색안경을 끼고 타인의 선과 악을 구분하고, 공기는 탁하고 맑음이 느껴지고 맑은 공기를 마시면 오래 살고, 몸이란 빈약하고 건강함이 있어 정력이 강하고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좋은 쪽과 나쁜 쪽을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그렇게 보는 것이지 이 세상엔 좋고 나쁨이 없다. 이 말은 신이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것에 후회가 없다는 말이다. 단지 인간이 이 세상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우리도 이미 과학 교육 받아서 이 정도는 알고 있다. 18경계라는 숫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식하는 사람에 따라 그 수야 늘어날 수도 있고 간단하게 줄일 수도 있다. 과학의 입장에선 이미 세상이 이렇게 생겼고, 그 세상을 보기 위해 우리 감각기가 생기고, 그 감각기에서 오는 신호를 해석해서 우리 뇌가 세상을 인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인식 결과 좋고 나쁨을 구분하는 가치관이 생기고, 그 가치관에 따라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세상을 보기 때문에 스스로 고통을 알게 된 것이라고 한다. 개독 경전에 나오는 분별과를 따 먹은 결과이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세상을 등지고 숨어서 감각을 끊고 금욕하여 숨쉬기만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이미 도사들과 불교 승려들이 이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 글이 사실이면 그들 중에 어찌해서 깨달은 자가 이미 없겠는가? 내가 보니 일제시대 서양 과학과 종교를 참고하여 앞을 장식하고 도교와 불교로 마지막을 정리한 글 같은 느낌이다.(^^)

 

출처 : 외로운 꿈돌이
글쓴이 : 코삐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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