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제9계 격안관화
[병법삼십육계] 제 9계 격안관화(膈岸觀火)...
전국시대 같이 진나라에서 갈라져 나온 위와 한, 조는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비슷한 수준의 나라들로서 같은 나라에서 갈라져 나왔고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만큼 서로 대립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난세인 전국시대이고 보니 그 갈등은 대개는 전쟁으로 이어지곤 했었다. 당시는 한과 위가 상당히 오래 서로 대립하여 다투고 있던 때였다.
진(秦)의 혜왕은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이용해 볼 수 없을까?"
그러나 진(秦)이 동쪽으로 진출하는 데 있어 관문역할을 하던 세 나라들이고 보니 진나라가 움직이면 또 다툼을 멈추고 한 데 힘을 모아 대항하곤 하던 터라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렇다할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그 무렵 진나라에는 진진이라는 이름의 세객(說客)이 머물고 있었다. 세객이란 천하를 떠돌며 자신의 재주를 팔아먹고 사는 자들이다. 어쩌면 그들이라면 나름의 방책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혜왕은 그를 불러 의견을 물었다.
진진이 대답했다.
"옛날에 변장자라고 호랑이를 잘 잡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길을 가는데 문득 변장자는 두 마리의 호랑이가 한 마리의 소를 잡아먹으려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변장자는 즉시 칼을 꺼내들고 그 호랑이를 잡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근처에서 같이 보고 있던 한 아이가 그를 막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사나운 호랑이가 한 마리 소를 함께 먹으려 하니, 얼마 있지 않아 반드시 서로 소를 놓고 크게 싸울 것입니다. 싸움이 끝이 없게 되면 나중에는 서로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이 될 터이니, 힘이 약한 호랑이는 물려 죽을 것이고 힘이 센 호랑이는 온몸에 상처를 입어 약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약해진 호랑이도 어렵지 않게 죽일 수 있을 것이니 가만히 있어도 작은 노력으로 두 마리의 호랑이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한과 위가 서로 오래도록 싸움을 하고 있으니 이 싸움이 더 오래 간다면 강한 나라는 손해를 볼 것이고 약한 나라는 반드시 패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피해를 입어 약해진 나라를 공격하면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진의 혜왕은 그 말을 따라 한을 쓰러뜨린 위를 아주 손쉽게 제압했다.
격안관화(膈岸觀火)란 말 그대로 벼랑을 사이에 두고 불구경을 한다는 뜻이다. 벼랑을 사이에 두었으니 불이 번질 염려는 없고 마음놓고 불구경 하면서 뭐라도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는, 흔히 말하는 손 안 대고 코풀기라 할 수 있다.
관도의 싸움에서 크게 패한 뒤 원소가 죽고 적장자(嫡長子)가 아닌 원상이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되자 사세삼공의 명문이며 수십 년 하북을 지배해 온 원씨일가는 크게 분열하여 멸망에 이르고 말았다. 사실 원소가 죽었다고 해도 하북의 청주, 유주, 병주, 기주 등을 거느리고 있던 원씨 일가의 세력은 조조로서도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원상에게 자리를 뺏긴 것도 모자라 노골적인 견제와 압력까지 가해지게 되니 원담은 결국 살기 위해서라도 조조에 투항할 수밖에 없었고, 조조의 군대에 원담의 공격이라는 내우외환을 맞게 되자 원씨로서도 더 이상 견딜 도리가 없었다.
심배가 지키고 있던 업성이 조조군에 의해 함락당하는 사이 원상은 이미 원담군에 피해 원희가 있던 유주로 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세가 이미 조조에게로 기운 것을 알아챈 대장 초촉과 장남의 반란으로 원상과 원희는 다시 오환에게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환마저 장료에게 패해 흩어지니 남은 것은 더욱 동쪽으로 도망쳐 요동을 다스리고 있던 공손강에게로 들어가는 것 뿐이었다. 조조는 바로 그 뒤를 추격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조조의 진중에는 한 가지 불행한 일이 닥치고 있었다. 조조의 참모 가운데 조조의 뜻을 가장 잘 헤아리고 그 재주도 빼어났던 곽가가 유주의 거친 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풍토병에 걸려 죽어버린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곽가의 건의에 의해 삭초제근이라 원씨의 뿌리를 뽑겠다며 더욱 행군의 속도를 높이던 참이라 유언을 남겼으니,
"지금 공격하면 저들은 하나가 되어 우리 군에 맞서 싸울 것입니다. 그러나 공격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원래 원씨와 공손씨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반드시 다투어 공손강은 원씨를 반드시 죽여 바치게 될 것입니다."
곽가의 말대로 였다. 공손찬을 멸망시킨 이래 원소는 호시탐탐 요동의 공손씨를 노리고 있었고, 원희는 그 첨병에 있던 이였다. 당장 조조가 쳐들어온다니 원희와 원상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일단 조조가 공격하기를 멈추고 지켜만 보고 있으니 그럴 이유마저 없어졌다. 차라리 원희와 원상을 죽여 조조의 환심을 사는 것만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이니 곽가의 예언대로 공손강은 원희와 원상을 죽여 그 목을 조조에게 보냄으로써 조조에 굴복을 나타내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스페인은 역시 전체주의국가로서 스페인 내전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로부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던 처지였다. 그러나 스페인은 히틀러의 반복된 참전요구에도 결코 그에 응하지 않았다. 스페인으로선 아직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며 차일피일 미루면서 히틀러와 영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끝내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은 상태에서 독일의 패전을 맞았다. 결국 전쟁이 끝났을 때 유럽의 전체주의 정권 가운데 남은 것은 스페인의 프랑크 정권 뿐이었다.
터키 역시 영국으로부터, 그리고 독일로부터 여러 차례 참전의 제의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편을 들었다가 아예 오스만투르크 제국 자체가 해체되었던 터키로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터키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었던 것은 소련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소련이 영국과 동맹을 맺고 독일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으니 터키로서도 독일에 기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터키는 끝내 신중했고 결코 쉽게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일단 전쟁 돌아가는 것을 보고 전쟁의 향배가 분명해진 뒤에 결정을 내려도 늦지 않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결국 전쟁은 초반의 놀라운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터키는 독일의 패배가 확정되어지는 순간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미국과 영국 등의 승전국에 연합국에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상당히 뻔뻔스런 행위이기는 했지만 이로써 터키는 독일의 편을 들어 패전국이 되는 것도 막았고, 굳이 독일군과 전쟁을 치르느라 인명과 물자를 소모하는 것도 막았으며,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공산주의의 확장을 저지하고자 하는 영국과 미국의 힘을 빌어 소련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물론 그를 위해 한국전쟁에 두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하는 성의를 보여야 했지만 말이다. 혈맹이라서가 아니라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영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데 따른 반대급부로서 성의를 표하기 위해 그리 한 것이었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도 따지고 보면 격안관화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당시 압록강 건너는 명과 새로 일어나는 후금(後金)과의 대립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는데, 그러나 조선에는 거기에 끼어 한 몫 챙길만한 힘도 없었고 여건도 되어 있지 않았다. 명의 편을 들면 후금의 원한을 살 터이고, 후금의 편을 들면 명의 원한을 살 터이니 이래저래 임진왜란의 피해로부터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조선으로서는 결국 그 누구도 아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강홍립으로 하여금 명을 구원하도록 하고서는 정작 싸움이 불리해지자 알아서 항복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던 것이었고.
1920년대 포드사는 상당한 경영상의 위험에 놓여 있었다. 그동안 포드사의 번영을 이끌던 T카가 더 이상 시장에서 팔리지 않고, 새로운 경쟁자들의 새로운 디자인의 새로운 차들이 포드사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포드사가 키워 놓은 대중적인 자동차시장은 이들 새로운 경쟁자들로 가득 차게 되었고 포드사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누구나 포드사는 이제 끝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정된 시장에서의 과도한 경쟁은 각 제조사들에 무리를 가져왔다. 자본은 고갈되고 시장은 갈수록 포화되어가고 더 이상 시장의 새로운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시장이 정체를 맞았을 때 다시 포드사가 돌아왔다. 보다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자동차를 가지고서. 다른 경쟁자들이 피터지게 싸우는 동안 한 걸음 물러나 그들이 힘이 빠지기를 기다리며 그때를 대비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흙탕싸움이 되기 쉬운 경쟁에서 한 걸음 물러나 경쟁자들이 지치기를 기다리는 격안관화의 계책이었다.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 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무언가를 하기보다 더 좋을 수도 있다. 내 힘이 미치지 못할 때, 내 힘이 상황의 변화를 주도할 수 없을 때, 즉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상황을 이끌어갈 수 없을 때 차라리 그 속으로 뛰어들어 휩쓸리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예를 들어 주식을 할 때 시장의 유동성이 심해 도저히 장 예측이 어려우면 한 걸음 물러서서 상황 돌아가는 것을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느 정도 확실한 정보가 있고 가능성이 있다면 그리로 들이밀어 보는 것도 좋기는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물러서서 흐름이 분명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또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말하자면 격안관화의 요체는 "기다림"이다. 그리고 하지 않는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조급해 하지 않고 주도권이 내게 없으면 주도권이 내게 돌아오기까지, 아니 주도권이 내게 돌아오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손실로서 최대의 이익을 구할 수 있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불이야 남의 일, 한 걸음 물러서서 불과는 상관없이 불구경이나 하자는 속편한 계략이다.
물론 속편한 것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때를 기다리고 때가 오면 그 때를 놓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기다린다고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철저한 인내 뒤에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겉으로는 차가우면서도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광로와 같다고 하겠다. 그것이 격안관화 병법삼십육계의 아홉번째다.
확실히 글마다 편차가 있다. 매일매일 컨디션이 제각각이라. 작정하고 쓰는 게 아닌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이라 내용이나 글의 분량이나 문체다 모두 제각각이다. 어쩔 수 없는 한가한 아마추어의 한계라 보고. 이해하시길.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