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포획이론
포획이론
1. 정부가 그릇된 정책이나 규제를 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정학이나 정책학의 주요 연구대상 중 하나다. 상식적인 해답으론 역시 무능과 부패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능력이 없어 잘못된 정책을 만드는가 하면 부패한 탓에 의도적으로 옳지 못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더 본질적인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정부규제의 효과에 대한 연구로 198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조지 스티글러는 이를 날카롭게 집어냈다. 71년 발표한 '규제의 경제이론'이라는 논문에서 그는 듣기에도 생소한 '포획이론(Capture Theory)'을 제시했다.
이 이론은 규제를 받는 대상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부를 이용하려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고도의 전문분야에서 정부는 이익집단의 주장과 설득에 넘어가 휘둘리기 쉽다고 한다.
'포획'이란 말도 정부가 특정 집단에 사로잡힌다는 것을 가리킨 것이다.이는 부패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익집단은 뇌물이 아니라 전문성이나 정보를 통해 정부를 사로잡기 때문이다. 또 정부가 형편없는 후진국이 아닌 이상 일정한 능력과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무능과도 거리가 있다. 다만 이익집단이 공무원들의 머리 위에서 논다는 게 문제다.
극단적인 경우 포획이론은 정부의 정책이나 규제를 특정한 집단이익을 보호해주기 위한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물론 정부를 의도적으로 삐딱하게만 본다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이익집단에 사로잡히면 선의에서 마련한 정책들도 결과적으론 공익을 해칠 위험이 있다는 것이 포획이론의 경고다.
이 이론은 미국에서 독점을 조장하는 정부의 규제정책을 설명하는 데 자주 적용된다. 예컨대 의료.교통 등 경쟁보다 독점으로 흐르기 쉬운 분야가 포획이론의 주무대다
2. 요즘 "덫"이란 말이 유행이다.
국내 정치.경제.사회현상을 놓고 "좌파적 가치의 덫"(안국신 중앙대 교수),"개혁의덫"(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에 빠졌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국내 기업의 "투명성의 덫"을 언급했다.
독일 언론인들이 제기한 "세계화의 덫"이나 일본식 "유동성 함정(덫)"도 먼나라 이야기만은 아닐 듯싶다.
덫(trap)은 사전에서 "짐승을 꾀어 잡는 기구"로 풀이돼 있다. 덫에 걸렸다면 곧 포획된 상태다.
이는 노벨 경제학상(1982년)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러의 "포획이론(Capture The ory)"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포획은 정책이나 규제를 펴는 정부.정치인.관료가 잘 조직화된 이익집단 에 붙잡혀 있는 상태를 말한다.
정부 등 규제자는 정치적.경제적 편익을 안겨주고 이익집단은 그 댓가로 투표, 선거운동 지원,정치자금,퇴직후 고용보장 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갖가지 덫에 걸린 한국에서 포획이론은 교육 노동 의료 법률서비스 공공서비스 등에서 정책이나 규제와 이해집단간의 관계를 파악하는데 유용하다.
정부 정책.규제의 이면을 보는 잣대로 새겨둘 만하다.
시대의 유행어인 개혁도 포획이론 관점에서 보면 선의로 출발했다고 해서 반드시 공익적인가 의아해질 때가 많다.
3. 최근 수년 새 사법시험 합격자 정원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시민단체나 기업,관공서 등에 취직해 있는 변호사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현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처럼 당연한 일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데는 이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기주의 때문이 크다. 이들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신들의 '밥그릇'이 위협받는데 누가 찬성하겠는가. 그래서 이들은 사시 합격자와 로스쿨 정원을 줄여달라고 정부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경제학은 이를 '포획이론'이라고 부른다. 정부 규제를 받는 민간이 사냥꾼(정부)에게 자신을 '잡아가달라(더 규제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로부터 면허나 특권을 받아 독점적 공급자로서 활동하는 의사나 변호사 같은 직업은 포획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의사들도 의사 숫자가 늘어나는 데는 반대다. 국민들이 값싸고 친절한 의료서비스를 원하고 있고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안되는 것은 의과대학 정원이 제한돼 있고 이를 통해 의사 공급이 조절되고 있어서다.
실제로 미국에선 20세기 초 192개의 의과대학이 1944년 69개로 줄어드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인구 10만명당 의사 수도 1900년 157명에서 57년 132명으로 감소했다. 미국 의사협회가 의사 공급량을 줄여달라고 정부에 매달린 때문이었다. 당시 명분도 '자격 없는 의사를 걸러내 국민들에게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자유시장경제는 하나의 "전설적 모형"이 있다.
시장기구는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경제활동을 자유방임상태에 맡겨놓으면 자동조절이 되어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 낸다는 모형이 그것이다.
시장기구안의 자동 조절장치가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가격기구)"이다.
자유방임주의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조정하는 자본주의는 완벽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케인스는 자본주의가 완벽하다고 보지 않았으며 정부가 개입하여 그 약점을 보완해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정부의 개입은 당연히 "규제"를 낳는다.
정부가 개입-규제하는 자본주의가 혼합경제체제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혼합경제체제는 여러가지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천재 경제학자 케인스는 이러한 구조적 모순에 대해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어떤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만일 케인스가 정부개입의 구조적 모순을 전혀 몰랐었다면 그는 정치적으로 순진했다 할 것이고, 알고도 모른척 했다면 분명히 부도덕했다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개입과 규제는 어떤 모순을 낳을까.
자본주의 체제에는 기업 협회 노동조합 등 각종 특수 이익집단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규제를 싫어한다.
그 대표가 기업이다.
기업은 규제를 가장 싫어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규제는 존재한다.
이제 기업은 규제의 그물망을 뚫고 나오려 한다.
왜냐하면 규제라는 망을 뚫고 나오는 자만이 남들이 못누리는 독점적 특혜(경제적지대)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규제를 뚫으려고 정치가와 관료들에게 로비한다.
그들은 돈으로 정치가들과 관료들을 "포획"한다.
이것이 "규제의 포획이론"이다.
규제받는 자가 규제하는 자를 포획하여 역이용한다.
그래서 어떤 경제학자는 이렇게 빈정댄다.
"기업들은 규제를 즐길 수도 있다.
규제하는 자들이야 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다.
이들을 돈으로 포획하면 몇배의 돈이 쏟아진다"
또한 다른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죽어라고 공장을 돌리는 것보다 국회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편이 훨씬 이득이다.
많은 기업(특수이익집단)에 있어 국회는 돈이 있는 곳이다.
강도는 은행주변을 배회하고 기업가는 국회주변을 배회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정치가가 쥐고 있는 것 같고, 문제는규제속에 있는 것 같다.
혼합경제에서 기업가들이 역이용하는 규제를 완전히 철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규제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
부패는 분명히 정부간섭의 실패이며 정부규제의 실패이다.
규제가 커지면 부패의 단위도 커진다.
관료들이 최소한의 규제만을 행사할 때 부패는 최소화 된다.
정치가는 경제인이 역이용하는 규제를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
정치와 경제의 건전한 관계는 "규제의 최소화"에서만 정립된다.
그리고 규제의 최소화는 정부의 최소화라는 바탕위에서만 가능하다.
정부의 최소화는 구체적으로는 관료의 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관료는 그 속성이 규제적이므로 관료의 숫자와 규제는 비례한다.
지금 재계에서는 관료의 수를 현재의 10분의1 규모로 줄여야 한다는 극단적인 제안을 내놓고 있다.
이제는 정계에서 이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안을 내놓아야 한다.
대선 주자들의 제1의 정책목표가 작은 정부에 대한 공약이어야 한다는 것은 더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