處世

상대의 말을 존중해야 존중 받는다

kongbak 2008. 6. 17. 17:44
상대의 말을 존중해야 존중 받는다
70대 부부가 상담을 하러 왔다. “자꾸 아내가 이혼을 하자고 하네요.” 남편은 화가 많이 난 듯 씩씩거렸다. 부부는 40년을 함께 했으며 주변에서는 금슬 좋은 잉꼬부부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혼이라니?

남편은 흥분하며 말했다. “제가 뭘 못 해줬습니까? 바람을 피기라도 했나, 돈을 못 벌어다 줬나, 남편 구실을 못 하길 했나. 정말 억울합니다.” 아내는 남편 얼굴은 보기도 싫다는 듯 바닥만 응시하다 “그러니까 조용히 갈라서자구요. 자식들도 다 출가시켰고, 저는 더 이상 당신하고 살 이유가 없어요.”

말로만 듣던 황혼이혼이었다. 나는 뭔가 두 사람 사이에 큰 오해가 있다는 생각에 아내분에게 먼저 물었다. “꼭 이혼을 하셔야겠습니까?” 그제야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그동안 가슴 속에 꾹 참아왔던 말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하루를 살아도 언어폭력 없이 살고 싶어요.” 40년 동안 아내가 무슨 말만 하면 남편은 꼭 중간에 “그게 아니고”하면서 말을 끊었다. 아내의 말을 끝까지 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한 마디로 아내는 심각한 언어폭력에 시달려왔던 것이다. 그날도 아내가 남편의 언어폭력에 대해서 입을 열자마자 바로 “그게 아니고”하면서 말을 가로막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아내가 남편에게 쌓인 감정들을 털어놓자 남편은 콧방귀를 뀌면서 “그래, 내가 잘못했다고 치자. 잘못했다고 치면 될 것 아니야?”라며 더 이상 말을 못하게 막았다. 참 나쁜 버릇이었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못해 남편을 타일렀다. “사람이 말할 때 ‘그게 아니고’라고 말을 끊어버리면 상대의 의견은 묵살됩니다. 아무리 상대가 틀린 말을 하고 있고, 말 같지 않은 말을 하고 있어도 끝까지 다 들은 뒤에 ‘내 생각은 이런데’라며 말을 꺼내야 합니다. 상대의 생각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잘못했다고 치자’는 말도 그랬다. ‘잘못했다고 치자’는 것은 결국 ‘내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말로 오히려 자신에게 억울하게 누명 씌우지 말라, 없는 죄를 일부러 만들지 마라는 얘기다. ‘잘못했다고 치자’는 말 대신 ‘나는 잘 하려고 했는데 당신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그것으로 깨끗하게 끝나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는 위대하나 위험하다. 남에게 큰 감흥을 줄 수도, 큰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관계는 IQ나 지식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IQ는 인간관계의 핵심인 감성을 포함하지 않고 있으며, 지식 역시 정확한 판단력과 도덕적 기반까지 갖출 수는 없다.

언어에 있어서 IQ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전부다. 두뇌회전이 빠르다고 남들보다 학식이 많다고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면 누구보다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다.

40년을 함께 산 노부부도 언어폭력 때문에 황혼이혼의 문턱에 서는 이 마당에 자꾸 국민의 생각을 ‘그게 아니고’ ‘잘못했다고 치자’식으로 덮어버리려고 한다면 황혼이혼이 아닌 조기이혼의 위기까지 갈 수 있음을 명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