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결코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kongbak 2008. 3. 31. 07:00
티벳! 결코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국, 소수민족 경제 발전시켜 준다며 역사 말살

1. 들어가기 전에..

연일 티베트의 문제로 국제 사회가 혼란스럽습니다. 티베트는 독립을 요구하고 나서자 지나족은 무력으로 이들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일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우리 나라 역시 위태롭습니다.

우선 왜 중국이그토록 역사에 목을 매는지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먼저 중국은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국가입니다. 그동안 티벳과 신장 등 소수민족과의 끊임없는 독립분쟁에 시달려왔음을 아실겁니다. 사실 소수민족의 영토인 티벳이나 동북지방, 몽골을 다 빼고 나면 중국영토는 전체 국토의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즉, 어느 한 소수민족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전체가 흔들리므로, 이 문제는 중국의 중요한 과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티베트의 독립운동으로 잠시 주춤하지만 특히 중국이 가장 주목하는 지역은 연변 조선족 자치주입니다. 지금 지나는 한반도의 정세 변화에 따라 연변의 조선족들이 동요할 것을 매우 우려하고 있으며 한반도 통일 이후의 지나 분열을 사전에 막기 위해 지금까지 뚜렷한 연고권이 없었던 만주지역 역사를 새롭게 구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변하고 있는 국제정치상황 속에서의 치밀한 계산, 바로 그것이 2천년 전의 고구려 역사에 대해 새삼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는 지나족의 속내입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 한국과 지나는 바야흐로 역사전쟁의 시간을 맞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티벳의 사태를 우리가 뒷짐 지고 볼 수 없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서북공정과 동북공정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대학 후배에게 역사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들어오는 대답은 자신은 이과이기 때문에 역사를 싫어한다고 하더군요. 여러분도 역사는 단순히 골치아픈 수능의 한 과목으로밖에 생각지 않으십니까? 역사는 미래입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미래이고 우리 조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이며 나아가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입니다. 역사를 모르고 어찌 나라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역사와 언어를 잃어 버린 민족, 그 민족은 반드시 망하게 됩니다.

 - 편집자 주-

 

 
  중국이 티베트 라싸에서 벌어진 시위를 강경 진압한 데 대한 항의의 표시로 16일(현지시간) 한 인권 운동가가 프랑스 파리 중국대사관 정문 위에 걸려 있는 중국 국기를 내리고 대신 티베트 깃발을 걸려 하고 있다. 프랑스 경찰은 이날 깃대를 부러뜨림으로써 티베트 깃발이 게양되는 사태를 막았다. [파리 AP=연합뉴스]

1. 티베트 사태 계기로 본 ‘변방정책’

자원 쓸어가고 경제권 장악해 반감 뿌리깊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3·14 티베트 사태’를 계기로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정책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티베트인들의 물리적 저항을 초래한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국가 분열에 민감해 하면서 ‘중화(中華)’라는 울타리를 내세워 민족 간 통합만을 추구하는 중국 정부에 대한 소수민족의 불만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민족 자극한 역사 문제=1949년 건국 초기엔 사회주의 국제주의 노선에 따라 55개 소수민족에 대해 다소 유화적이었던 중국 정부가 개혁·개방으로 자신감을 얻은 86년부터 고삐를 죄었다. 이른바 ‘변강공정(邊疆工程:변경 지역 역사 작업)’이다. 러시아·카자흐스탄·인도·몽골·북한·베트남 등 14개 국가와 인접한 국경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을 상대로 새로운 정책을 도입한 것이다.
낙후한 변경 지역의 소수민족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중국의 것으로 통합하는 조치가 이어졌다.

베이징(北京)의 한 전문가는 “
국가 분열 상태를 피하려는 중국 당국의 통합 조치가 각 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해당 소수민족이 크게 반발했다”고구려와 부여·발해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2002년의 동북공정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말했다.

◇경제적 요인도 작용=이런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 소수민족들은 “경제 개발을 내세워 자원을 빼가고, 한족들이 현지 경제권을 장악하면서 소외감을 키웠다”고 반발한다. 티베트와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는 광활한 면적에 자원도 풍부하다. 이미 중국 정부는 서부의 천연가스를 동부로 보내는 서기동수(西氣東輸), 서부에서 생산한 전력을 동부로 보내는 서전동송(西電東送)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진척시켰다. 티베트인들은 2006년 7월에 개통된 칭짱(靑藏)철도(시닝~라싸)에 대해서도 “티베트의 자원을 약탈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며 “티베트 경제가 한족들에게 갈수록 종속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번 시위에서 티베트인들이 한족을 집중 공격한 데는 이런 반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신장 지역의 경제 건설을 주도하는 건설 병단(兵團)에 대한 위구르인들의 시각도 곱지 않다. 중국은 지난해 1월 신장자치구에서 분리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 세력의 훈련기지를 급습하기도 했다. 중국 내 동포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지린(吉林)성이 백두산에 대한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의 관할권을 박탈했기 때문이다.

시닝=장세정 특파원

 

2. 소수민족 문제에 민감한 이유는?


인구 100만명 이상의 소수민족(2000년)
민족 인구(만명)
주요 거주 지역
장족(壯族) 1617.9 광시, 윈난, 광둥
만주족 1068.2 랴오닝,지린, 헤이룽장, 베이징 등
회족(回族) 981.7 닝샤,깐수,신쟝,칭하이,윈난 등
묘족(苗族) 894.0 구이저우,후난, 윈난, 광시 등
위구르족 839.9 신쟝
토가족(土家族) 802.8 후난, 후베이, 충칭, 구이저우
이족(彛族) 776.2 윈난, 쓰촨, 구이저우
몽골족 581.4 네이멍구,랴오닝,지린, 헤이룽장 등
티벳족 541.6 티벳,쓰촨, 칭하이,깐수,윈난
동족(人+同족) 296.0 구이저우, 후난,광시
요족(瑤族) 263.7 광시,후난,윈난,광둥
조선족 192.4 지린,헤이룽장,랴오닝
백족(白族) 185.8 윈난,구이저우,후난
하니족 144.0 윈난
하사크족 125.0 신쟝
려족(黎足) 124.8 하이난
태족(人+泰族) 115.9 윈난

중국은 소수민족 문제에 유독 민감하다. 일부에서는 한족(漢族) 외에 55개 소수민족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소수민족이 많기로는 러시아가 더 하다. 1707만5200㎢의 영토에 1억4378만명의 인구를 가진 러시아의 소수민족은 공식적으로 131개다. 극소수 민족까지 포함하면 175개 정도다. 러시아인이 전체 인구의 82%를 차지한다.

면적 32만5360㎢, 인구 8269만명으로 중국과 비교할 수 없는 베트남도 54개 소수민족이 있다. 베트남족이 전 인구의 87%를 차지한다. 인구 2억9303만명인 미국은 거의 모든 인종과 민족이 산다. 전체 인구의 83.4%가 백인이고 흑인은 12.4%, 아·태계 3.3%, 아메리칸 인디언 0.8% 정도다.

지난 2000년 11월 실시된 제5차 인구조사에 의하면 중국의 총 인구는 12억6583만명이다. 홍콩특별행정구의 678만명, 마카오 특별행정구의 44만명은 뺀 숫자다. 이 가운데 소수민족은 1억643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8.41%, 한족은 11억5940만명으로 91.59%였다. 소수민족 비율이 20%에 육박하는 나라들에 비하면 중국은 오히려 양호하다.

9600만명의 당원을 가진 중국 공산당이 독재를 하고있기 때문에 소수민족에 대한 통제력도 대단히 강하다. 그러나 중국은 소수민족 문제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소수민족 분리독립하면 중국 전체가 분열"

"중국이 소수민족 문제를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칫하면 중화인민공화국이 해체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 지도부나 학자들 가운데는 '옛 소련이 망한 것은 소수민족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한 중국 학자의 분석이다.

그는 "중국은 지금 지역간 소득격차가 극심하다. 광둥·저장성 등 동부연안의 잘사는 성들은 '왜 우리한테 세금 뜯어가 못사는 지역에 퍼붓느냐'고 불만이 크다"며 "소수민족이 독립하면 이들 지역도 떨어져나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소 김우준 교수는 "옛 소련의 경우 연방을 구성한 소수민족 공화국에서 러시아인들이 다수를 점하지 못했고 이것이 결국 분리 독립의 기폭제가 됐다"며 "중국 정부는 이를 보고 비록 한족이 소수민족 자치지역에서도 다수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총 국토면적은 959만6960㎢로 27개성(5개 자치구 포함), 4개 직할시로 이뤄져있다. 한반도 면적의 43.45배, 남한 면적의 96.66배다. 그러나 전체 인구의 8% 선에 불과한 소수민족의 집중 거주지역은 611만7300㎢로 전 국토의 63.72%나 된다. 중국에는 현재 소수민족 행정구로는 5개 자치구, 30개 자치주, 자치현(기(旗)포함) 120개, 1256개의 민족자치향이 있다.

소수민족이 분리하면 '강대국 중국'이라는 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소수민족이 각 성 인구의 10%를 넘는 곳은 모두 11곳이다. 네이멍구 자치구가 총 인구 2376만명 가운데 20.76%인 493만명이 소수민족인 것을 비롯해 랴오닝성(4238만명의 16.02%), 후난성(6440만명의 10.21%), 광시장족자치구(4489만명의 17.29%), 구이저우성(3525만명의 37.85%), 윈난성(4288만명의 33.41%), 티벳(262만명의 94.07%), 칭하이성(518만명의 45.51%), 닝샤회족자치구(562만명의 34.53%), 신쟝위구르 자치구(1925만명의 59.39%) 등이다. 후난성과 구이저우 성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경지역이다.

중국의 내륙 국경선은 2만2117㎞. 국경을 직접 맞대고 있는 나라는 1416 km를 접하고 있는 북한을 비롯해 러시아(북동쪽 3605 km, 서북쪽 40 km), 베트남, 몽골 등 14개국이다. 김우준 교수는 "중국 전체 국경선 가운데 1만9000㎞정도는 소수민족 집중거주지역"이라며 "국경선에 거주하고 있는 2200여만 명 가운데 반수 이상이 소수민족"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1949년 건국 이후 1959년과 62년 인도와 국경분쟁을 빚은 것을 비롯해 69년 옛 소련과 영토문제를 둘러싸고 무력충돌을 벌였다. 79년에는 베트남과 전쟁을 벌였고, 난사군도를 둘러싸고 여전히 분쟁 중이다. 만약 소수민족들이 다른 나라로 기울면 중국 국경안정은 그대로 무너진다.

또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석유, 가스, 석탄 등 지하자원의 보고다. 중국 국가통계국의 집계에 의하면, 소수민족 지역은 중국 전체 초원면적의 75%, 삼림면적의 42.2%, 삼림자원의 51.8%, 수력자원의 66%가 집중되어있다.

ⓒ 오마이뉴스 김태경



▲ 청나라가 중원을 점령하기 전에 랴오닝성 선양에 만들었던 궁전. 불과 300만명의 만주족이 인구 1억5000만명의 한족을 260여년 통치했다. 중국 역사의 절반정도는 소수민족이 다수 한족을 지배한 역사였다.

"중국은 수천년전부터 통일적 다민족 국가"

중국은 자신들의 소수민족 정책을 자랑한다.

헌법에 "중화인민공화국안의 각 민족은 모두 평등하다. 국가는 소수민족의 합법적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며, 각 민족의 평등, 단결, 상화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킨다. 그리고 그 어떤 민족에 대한 멸시와 압박도 금지한다"고 규정하고있다.

"기원전 221년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래 중국은 공고한 통일적 다민족 국가였다"며 "분열한 경우가 있었지만 이는 잠시였고 통일이 중국 역사발전의 주류였다"고 사상학습도 시켰다.

지난 2000년 중국 정부가 내놓은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과 그 실천>이라는 제목의 백서는 "지난 1952년 5억4000만 위안에 불과했던 소수민족지역의 공업생산액이 1998년에는 5313억 위안으로 약 100배가 성장하는 등 정치, 경제, 문화 각 방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했다"고 자찬했다.

이 백서는 "이전에 소수민족들은 봉건농노제 또는 노예제 사회의 속박에 시달렸다"며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후 소수민족들은 모두 평등한 지위에서 국가와 각 지방의 일에 참여함으로써 새 사회의 주인이 됐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소수민족에게 자치지역을 허용하고, 한족과는 달리 두 자녀 출산도 허용했다.

그러나 현실은 엄혹하다. 티벳 망명정부는 인도 다름살라에서 독립운동을 수십 년째 하고있다. 신쟝위구르 자치구의 경우 '동 투르키스탄'으로 독립을 추구하는 운동이 격렬하다. 이들은 지금의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및 카자흐스탄 남부지역을 포함하는 서투르키스탄과의 연대도 염두에 두고있다.

취재 중 만난 여러 명의 중국인들은 "보도통제로 언론에 소개되지 않을 뿐 신쟝 지역에서 관공서 등을 공격하는 일이 아주 많다는 것은 누구가 아는 사실"이라며 "많은 혜택을 제공하지만 공무원들이 무서워서 부임하지 않으려한다"이라고 말했다. "신쟝 지역에서 군 복무를 하던 친구가 위구르 족들의 시위를 진압하다 거의 죽을 뻔했다"는 경험담을 전하는 사람도 있었다.

위구르인들은 동 투르키스탄 망명정부, UNRF(연합민족혁명전선), 동 투르키스탄 이슬람 당의 조직도 만들었다. 미국에는 '위구르 어메리칸 협회'(www.uyghuramerican.org)라는 조직도 활동하고있다.

몽골족 통일운동도 거세

몽골족들은 네이멍구 자치구, 몽골공화국, 현재 러시아 지역인 부리야트 공화국을 합쳐 몽골족의 통일국가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강하다.

몽골사 전문가인 박원길 박사는 "네이멍구 자치구의 몽골족들은 한족들 앞에서는 절대 민족통일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며 "그러나 사석에서는 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과 다른 지역 몽골족과의 통합을 얘기한다"고 말했다.

중국인들이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재중동포들도 마찬가지다. 조선족들의 집중거주지역은 과거 고구려의 영토이자 간도 땅이다. 1909년 간도협약은 무효인 만큼 언제라도 한중 사이에 영유권 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 중국 정부는 간도 영유권 분쟁이 본격화되면 재중동포들이 우리 민족 편에 붙을 것으로 생각하고있다.

따라서 지난해부터 조선족들에게 '삼관(三觀)교육'을 시켰다. 삼관이란 조국관·민족관·역사관을 말한다. '조선족은 중국민족이다, 조선족 역사는 중국역사의 일부분이다'라는 내용을 주입하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받은 소수민족은 재중동포들이 유일했다.

대만 독립문제도 걸려있다. 대만 독립세력들은 "1683년 청나라가 정성공 세력을 진압할 때까지 중국 대륙의 그 어느 정권도 대만을 통치한 적이 없다"며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정권이고, 대만을 점령할 당시 중국은 탄생하기도 전이었다. 따라서 대만은 중국의 영토일 수 없다"고 말하고있다.

중국은 사방팔방으로 언제든지 분리독립을 추구할 세력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셈이다.

ⓒ2004 오마이뉴스 김태경



▲ 사진 앞쪽의 섬이 이성계가 요동정벌에 나섰다가 군대를 돌렸던 위화도다. 북한 신의주 건너편인 중국 단둥에서 바라 본 모습으로 손으로 잡을 듯 가깝다.

"자치구 설치 때 영역 축소"

신쟝위구르 자치구의 경우 1949년 중국군이 들어왔을 때 현지인들은 신쟝의 명칭을 동투르키스탄 또는 위구르스탄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신쟝(新疆)이라는 이름 자체가 '새로운 영토'라는 뜻이다. 지난 1755년 청나라 건륭제가 점령하면서 얻은 땅으로 제국주의적 냄새가 짙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거부당했다.

티벳인들은 현재 시짱자치구는 원래 영토의 절반도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티벳의 영역은 시짱자치구를 포함해 깐수성 남부, 칭하이성 서부, 신쟝위구르자치구의 남부 일부, 쓰촨성의 서부, 윈난성 서북부까지를 포함해 전 중국의 4분1인 250만㎢가 되는데 중국이 1965년 자치구를 설치하면서 잘라냈다는 것이다. 위구르인들도 자신의 원래 영역은 깐수성과 칭하이성까지 걸쳐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몽골족들은 현재 네이멍구 자치구가 원래 자신들의 영역 가운데 4분1을 잘라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들에게 자신들의 언어 및 문화를 배우는 것은 허용한다. 그러나 역사와 지리 학습은 금지한다. 재중동포들의 경우 1957년 민족정풍운동 이후 조선 역사와 지리에 대한 학습이 금지됐다. 연변에서는 8월15일이 광복절이 아니다. 엉뚱하게 '노인절'이다. 조선족들이 모여 광복절을 축하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자 편법으로 노인절을 만든 것이다.


한 30대 재중동포는 "따라서 젊은 조선족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역사시간에는 홍범도 장군의 활동 등 독립운동부터만 가르친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소수 민족의 언어로 된 지명도 계속 중국어로 바꿔왔다. 홍산문화로 유명한 네이멍구의 츠펑(赤峰)의 원래 명칭은 몽골어인 소오달맹(昭烏達盟)이었다. 그러나 마치 원래부터 한족들의 땅인 것처럼 '츠펑'으로 바꿨다. 네이멍구 자치구의 철리목맹(哲里木盟)은 90년대 말 통랴오시(通遼市)로 개명됐다.

신쟝위구르 자치지역에서도 쿠물(kumul)을 하미(哈密)로, 카쉬가르를 카섬(喀什)으로, 굴자(gulja)또는 이리(ili)를 이닝(伊寧)으로 바꿨다. 고구려의 백암성을 연주성으로, 오골성을 봉황성으로 바꿔 원래 고구려 산성이었음을 전혀 알 수 없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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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오마이뉴스 김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