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바흐

“농업도 IT산업...생각을 바꾸자”

kongbak 2007. 12. 19. 19:53

“농업도 IT산업...생각을 바꾸자”


이재욱 씨가 제안하는 ‘애그리 비즈니스’


농사꾼 이재욱 씨

"농촌 안정 없이는 선진국 진입 어려워
지장농법 미세가공법 등 신기술 개발
농업은 유전자 상품 거래하는 3차산업"


한미 FTA를 앞두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농업위기설마저 나돈다. 아이들 웃음이 끊긴지 오래고 중년의 노총각들이 신부를 구해 동남아를 전전하고 있는 곳. 그들에게 절실한 것은 농사에 대한 희망이다. 젊은이와 우수한 두뇌들이 농촌에 돌아오게 하는 것이 농촌에 훌륭한 법문이다.
특별기획으로 소개하는 이재욱은 백성을 먹여 살리는데 이미 검증된 경영자다. 수출시대에는 <노키아 tmc>에서 핸드폰 수출로 나라를 한번 먹여 살리더니, 환경의 시대인 이번에는 농업으로 이 땅과 환경을 살리기 위해 제2의 인생을 일구고 있다. 명실공히 원조 IT산업 1세대 경영자로서 이제 농업도 제3의 IT란 기치아래 IT농업을 뛰어들어 5년 만에 혁명적인 성과를 달성했다. 그의 IT농업 비전은 자연에서 지혜를 배우는 수행자들의 중생구제 비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더불어 어떻게 자연과 공존하며 살고 그러면서도 생계를 이어갈 방안을 명쾌하게 제시하며 널리 보급되길 희망하고 있다.
본지는 저자 이재욱의 양해를 얻어 출간을 앞둔 <농업은 제3의IT>의 초고를 바탕으로 재편집 보도한다. 편집자 주  
     

“이보게 젊은이! 내 소리 좀 배워가게나. 내 아무것도 안 받을 테니, 제발 내 소리를 배우게!”
한 노인이 젊은이들에게 다가가 애절하게 외쳤다. 행인들은 이상한 눈으로 노망한 늙은이 취급하며 멀리 달아났다. 언젠가 TV에서 본 명창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이 노인은 ‘수궁가’의 명창이었다. 수궁가의 인간문화재로 브래태니커사에서 목소리를 채록할 만큼 명인 중의 명인.
브래태니커의 인물로 기록된다는 것은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것과 같다.
그가 남산 국악원 앞에서 지나는 젊은이들에게 직접 구걸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소리를 이을 후계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급한 나머지 딱하게도 노구를 이끌고 손수 찾아 나선 것이다.
나도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농업도 IT라네. IT농업을 좀 배워가게나!”

나는 IT산업 1세대다. ‘IT’란 개념이 전무했던 시절, <노키아 tmc>회장으로서 모토롤라를 제치고 휴대폰 분야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중소기업으로서 ‘수출의 신화’라는 과분한 칭찬을 받으며 금탑 산업훈장을 받고 핀란드로부터 최고 기사작위를 받는 등 IT분야에서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적인 IT강국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기업 일선에서 물러난 후, 나는 마산의 한 시골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농촌은 더 이상 후덕한 옛날 고향이 아니었다.
녹색혁명으로 보리 고개를 넘긴 70년대의 농촌은 활기가 넘쳤다. 명절이면 이리 저리 떠들썩하게 농악이 울려 퍼지고, 가을 수확기면 농민은 작은 논밭을 늘려가는 기쁨도 있었다. 외양간의 누렁소 몇 마리면 그래도 자식 대학을 가르칠 수 있었다. 논밭을 팔면 목돈을 쥐는 재산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쌀 백 가마니를 팔아도 중형 자동차 한대 살 수 없다. 소 여러 마리 팔아도 송아지와 사료 값 빼면 자식 대학 한 학기 등록금도 안 된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긴지 오래고 중년의 노총각들은 신부를 구하기 위해 동남아를 배회하고 있다.
언제부터 우리 농촌이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이게 국민소득 2만 불을 바라본다는 국가 터전의 현실이란 말인가. 우리는 마음의 고향, 생명의 터전을 잃어가는 게 아닌가. 수출로 달러를 벌어들이면 뭐하나. 터전 없는 수출 선진국이 주권 없는 식민지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돈이 아무리 많아도 건강을 잃으면 소용이 없듯이, 수출로 아무리 외화가 넘쳐나도 땅을 잃으면 국가의 건강을 잃는 것과 같다. 농촌의 안정 없이는 절대로 선진국의 문턱을 넘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농업에 뛰어들었다.

사실, 나는 그동안 벌어 놓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여유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농사일을 시작하자 주위에서, ‘친환경 유기농으로 회장님이 먹을 것을 취미삼아 짓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도전한 과제는 이것이다.
젊은이들이 농촌에 돌아와서 논밭 2000평 지으면서 3, 40대 가장으로서 부모님 모시고 아이들 교육시키면서 단란하게 살 수 있는 농촌의 가정. 그리고 방학이면 도회지의 친척들이 내려와 즐겁게 휴가를 보낼 수 있고, 친환경 재배한 먹거리를 나눠줄 수 있는 중산층 농촌 가정.
나는 5년 전에 벼농사를 처음 시작했다. 토질이나 농업기술과 같은 기본 경작 환경은 기존의 농민들보다 훨씬 못한 천수답 다락 논에서 시작했다. 게다가 나는 성한 몸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농업도 IT비즈니스’라는 신념으로 돈키호테처럼 덤벼들었다. 두뇌를 활용한 결과, 두 가지 가시적인 성과를 얻었다.

1. 지장농법


노동력과 비용을 1/10로 줄이면서 땅을 살리는 친환경 농법(일명, 지장농법)에 성공했다. 저노동·유기농·저농약 쌀로서 맛과 질도 뒤지지 않는다.

2. 쌀자장면(쌀 미세가공법)


동시에 나는 수입 밀가루에 도전했다. 수입밀과 쌀이 경쟁관계이기 때문이다. 쌀 소비량보다 밀 수입량이 더 많은 현실 때문이다. 그래서 밀보다 더 맛있는 쌀미세가공법을 개발했다. 쌀 자장면을 만들었다. 빵, 과자의 원료를 밀가루에서 쌀가루로 대체하면 쌀의 과잉을 해소할 수 있다.

나 같은 농사 일자무식도 두뇌만 쓰면 이렇게 농촌에서 얼마든지 좋은 농산품(나는 ‘유전자상품’이라고 한다)을 즐기면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시범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나 한사람만으로는 풀 수 없는 과제가 있었다. 사회와 국가가 나서야 하는 과제다. 새로운 농업 패러다임에 관한 것이다.
가령, 과거에 우리 농촌이 잘 나가는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하우스 딸기로 성공한 농민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적이 있다. 그러나 몇 년 뒤 결과를 보면 너무나 참담하다. 너도 나도 딸기를 재배해서 하우스 농민들이 나라 돈을 얻어 빚더미에 시름하고 있다. 첨단 농업 재배 기술로 무장하고 의욕적으로 도전하여 성공했다는 농민조차도 결국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성공한 일부 농민들조차도 자식들에게 농업을 물려줄 생각을 하지 않는 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도회지로 나가 부모처럼 손에 흙 묻히지 말라는 것이 유언이자 출세의 상징처럼 되어있고,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출세한 자식들은 다시는 농촌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농촌이 되었다.
이것은 개별적인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농촌 시스템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단면으로 해석해야 한다.
고립적으로 성공한 농민들의 노력만으로는 고질적인 농촌 피폐의 악순환 고리를 벗어나기가 불가능하다. 연구자, 마케팅, 국가, 농민이 서로 합의하는 새로운 농업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다. 농업 분야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상대방을 너무 모른다. 내가 한번은 농촌지도자, 교수들과 같은 자리에서 한우의 맛에 대해 논쟁을 한 일이 있다. 농촌지도자는, “우리 한우가 세계에서 가장 맛있다. 고소하고 쫄깃한 맛을 수입육이 감히 따라올 수 없다.” 반면 교수는 회의적인 의견을 말했다. “내가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보고 음식을 맛보니 더 맛있는 소고기가 많았다. 부드럽고 입에서 살살 녹는 게 일품이었다.” 두 사람이 끝도 없이 옥신각신하기에 내가 나섰다.
“두 사람 모두 맞거나 모두 틀린다. 서양은 스테이크문화다. 그래서 기름기 적고 연한 고기를 선호한다. 한국은 불판에 구워먹거나 양념 불고기 문화다. 로스구이나 위해서는 근내지방이 잘 발달돼야 하고 불고기는 씹어서 고소한 맛이 나야 한다. 연한 송아지고기를 좋아하는 스테이크 문화 쪽에서 보면 쫄깃한 고기는 질기다고 하고, 불고기 문화 쪽에서 보면 기름기 없는 고기를 푸석하다고 한다. 맛은 먹는 문화에 차이에서 오는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기사 출처 : 한국불교신문 (2007-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