處世

[스크랩] 전쟁의 기술

kongbak 2007. 10. 21. 18:00
 

1. 도발적인 서두 -“화해는 헛된 희망"

「전쟁의 기술」번역판 표지에는 등 뒤로 칼을 숨긴 사람의 그림이 있다. 도발적이다. 책 서두의 문장 역시 거침이 없다.

 

 “삶은 전투와 충돌의 연속이다(29쪽).” “언제나 전투 직전 상황이라고 생각하라(같은 쪽).” “동지와 적을 구분하는 것이 야만적이고 구시대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귀 기울이지 마라. 그들은 싸움에 대한 두려움을 그릇된 온정으로 숨기고 있을 따름이다(30쪽).”

 

 “사람들의 호감을 사야 한다는 유혹에 빠지지 말라. 그보다는 존경받고, 심지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낫다(34쪽).” 이것은 500년 전 이태리 르네상스 시대에 나타난 마키아벨리를 연상시킨다. “결과만 좋으면 수단은 언제나 정당화되는 것이다(시오노 나나미, 한길사간, 「마키아벨리 어록」, 81쪽).”

 

 “군주 된 자는 위대한 일을 하고 싶으면 사람을 농락하는 법, 즉 권모술수를 배울 필요가 있다(같은 책, 85쪽).” “(권모술수의) 활용은 다만 물밑에서 이뤄져야 한다. 같은 책, 86쪽) ‘전쟁의 기술’의 저자 로버트 그린은 더욱 통렬하게 말한다. “중립지대란 없으며 화해는 헛된 희망에 불과함을 인식해야 한다. 타협하고자 하는 욕망은 상대방이 당신에게 사용할 무기가 된다(40쪽).”


이 책은 기업경영에 관해서라기보다는 모든 개인에 대한 처세술 서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전제는 삶이란 곧 ‘싸움의 연속’이며 따라서 실제 전쟁에서 사용되는 ‘전쟁의 기술’이 모든 삶의 현장에서 가치있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고금의 전쟁사에 나타난 사례를 통해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에게 33가지의 전략적 조언을 하고 있다.

2. 전쟁의 기술은 평화시에도 적용가능한가?

현대사회를 흔히 무한경쟁 사회라고 한다. 경쟁이 일정 범위 내에서 규칙을 준수해가며 이루어질 경우 이것은 게임이나 스포츠의 모습을 띤다. 그러나 경쟁이 ‘너 죽고 나 살기’식으로까지 치달으면 전쟁이 된다. 전쟁은 극한 상황에서 각 개인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벌이는 생존의 게임이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死則生 生則死)” 비장한 각오가 필요한 하루하루가 지속되는 것이 현대인의 삶일지도 모른다.


전쟁의 기술을 경영전략에 적용하고자 시도한 것은 경영학 자체의 발전과 맥을 같이 한다. 전략(strategy)이라는 단어 자체가 군사용어이며, CEO(Chief Executive Officer)나 본사(headquarters) 등도 마찬가지다. 이론적으로 군사전략을 기업경영 또는 개인 처세에 적용하고자 한 시도는 적지 않았다. Al Ries and Jack Trout(1986)는 프러시아의 전략이론가 클라우제비츠의 이론을 마케팅에 적용했으며 Brian Tracy(2002) 역시 군사전략을 기업경영과 개인 처세에 적용하고자 했다. 20세기의 클라우제비츠라고 불리우는 군사 이론가 리델 하트(Liddell Hart)는 그의 주저 「전략(Strategy)」(1954)에서 군사전략상의 몇가지 시사점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적용된다는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군사전략을 바로 기업경영이나 인간의 일상행위에 적용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피터 슈나이더는 Journal of Consumer Marketing(2002)에 기고한 한 서평에서 전쟁 기술의 적용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데 그 논거가 흥미로워 간단히 요약해 본다.

첫째 탁월한 군사적 지도자가 평상시에는 탁월하지 못하거나, 탁월한 일상적 리더가 전쟁 시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에이브라함 링컨, 율리시즈 그랜트, 윈스턴 처칠과 같은 걸출한 전시 지도자들이 평상시에는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어려움을 겪었다. 철도건설사업의 영웅인 조지 매클런(George McClellan)은 남북전쟁에서 군인으로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행적을 보였다. 또한 포드사의 경영자였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 Namara)는 기업에서 적용되던 것이 펜타곤에서는 적용되지 않음을 발견했다고 실토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말(馬) 등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으나 말 등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馬上得天下 馬上不可治天下)”고 하여 전시의 리더십과 평화시의 리더십이 같을 수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둘째 전쟁 기술을 통한 응용서들이 대부분 사례의 선별적 선택을 통해 교훈을 도출하고 있으나 이는 방법론적으로 하자가 있다.

속전속결로 승리한 지휘관이 있는가 하면 전투의 회피를 통해 승리한 지휘관도 있다. 특정 사례를 통해 보편적 결론을 끌어내는 방식은 신뢰성과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전쟁이란 그 자체 윤리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것이다.

생사를 놓고 무자비하게 싸우는 전쟁을 평상시 기업 경영에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기업경영은 소비자에게 최선의 품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그에 상응한 댓가, 즉 이윤과 신뢰를 획득한다는 황금률(golden rule)의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특정한 입장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군사적 개념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경영학의 오랜 전통이다. 다만 적용을 할 때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만은 충분히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3. 본서의 구성 - 21세기의 兵法

본서는 일종의 병법과 같은 구성을 가지고 있다. 병법의 원조는 손자병법이다. 중국은 기원전으로 올라가는 유구한 병법서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서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서양에서도 알렉산더, 한니발, 시저 등의 군사전략을 연구하고 이를 전쟁에 적용하고자 하는 시도가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영웅의 전투를 기록한 사서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중국에서는 전쟁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소위 ‘병법’이 추상적, 이론적 연구서로 만들어져 오래동안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중국의 병법서는 손자병법 이후 오자병법, 이위공병법, 사마양저병법, 제갈량신서, 육도삼략 등 무수히 많다. 최초의 작품인 손자병법은 이론적 깊이나 실천적 예리함에 있어서 이후의 모든 병법을 능가한다. 본서의 저자인 로버트 그린도 책의 서두에서 “나폴레옹과 손자”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헌사를 쓰고 있다. 실제로 본서는 손자병법의 구성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서양에서는 근세에 들어와서, 중국의 병법과는 조금 시각이 다르나, 전쟁에 대한 체계적 이론서인 클라우비츠의 「전쟁론」(1832)이 나왔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의 혁명가 마오쩌뚱은 손자병법의 애독자였던 반면,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은 클라우제비츠의 신봉자였다는 것이다. 본서는 상당부분 손자병법과 클라우제비츠 전쟁론의 내용을 원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책 본문 가장자리에 상당수의 손자병법의 구절들이 인용되고 있다.


본서는 얼핏 손자병법과 일맥상통하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1부 ‘자기준비의 기술’이라는 것은 손자병법 1편 시계(始計)편과, 2부 ‘조직의 기술’은 5편 병세(兵勢)편과, 3부 ‘방어의 기술’은 4편 군형(軍形)편과 4부 ‘공격의 기술’은 3편 모공(謀攻)편 등과, 마지막 5부 ‘모략의 기술’은 6편 허실(虛實)편, 13편 용간(用間)편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본서가 손자병법의 내용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전통적인 병법과 몇가지 측면에서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는 손자의 병법과 클라우제비츠의 저서와의 비교를 통해 이 책의 특징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4. 전쟁을 보는 시각 - 방어와 공격

본서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서두에서 상당히 전투적이고 공격적인 인생관을 피력하고 있다. 저자는 삶은 투쟁이며 우리 주변은 적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공격적 욕망을 숨긴다. 그들은 가까이 다가와서 더 많은 해를 끼치려고 한다. (친구는 당신을 다치게 하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존재다).(34쪽)” 저자는 주변에 숨은 적들을 노출시키고 이들을 공격하라고 부추긴다. “분노를 억누르고 당신을 위협하는 사람을 회피하며, 언제나 타협점을 찾으려 하는 식의 무난한 전략은 파멸을 부른다. ... 당신의 적과 대면하라. 탈출구는 그것 하나 뿐이다.(38쪽)”


이러한 입장은 평화주의적 전략서인 손자병법과는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손자병법은 가능한 한 전투를 회피하라고 권고하며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의 승리(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라고 역설한다. 반면 서양의 손자라는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저서 「전쟁론」에서 평화주의적 노선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인도주의자들은 전쟁의 참 뜻은 교묘한 수완으로 적의 무장을 해제시키든가 혹은 굴복시키는데 있는 것이지 적에게 과도한 손상을 입히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그 자체로는 그럴 듯 하게 보일지 몰라도 우리들은 이런 오류를 파기해 버려야 한다.

 

... 유혈을 수반하는 결전에 의해 위기를 해결한다는 것, 말을 바꾸어 한다면 적 전투력의 격멸을 본분으로 하는 노력이 전쟁의 정통적 적자임을 잊어서는 안된다.(「클라우제비츠와 전쟁론」135쪽, 이종학著)” 본서의 기본적 입장은 손자보다는 클라우제비츠의 노선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본론으로 들어가면 저자는 손자의 경제적 전쟁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즉 소모전보다는 책략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책략을 이용하여 적을 교란하고 분노케 하여 불리한 상황에 빠지게 만든다. 이것은 주력군과 주력군이 맞붙어 어느 한 편이 재기불능의 타격을 입게 만드는 ‘大會戰(grand battle)’ 스타일의 전쟁과는 다르다. 손자의 사상은 노자의 뒤를 이은 것이다. 노자는 “무기는 그 자체 상서롭지 못한 것(兵者不祥之器)”이라는 반전주의적 입장이다. 모든 군사전략가의 시조라는 손자가 반전주의 사상의 후예임은 이채롭다. 손자는 전쟁을 필요악으로 본다. 가급적 전쟁을 피하되, 도저히 어쩔 수 없을 경우 아군이나 적군이나 최소의 피해로 최단 시간에 끝낼 수 있는 전쟁을 하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단순히 승리하기 위해 책략을 쓰고 상대방을 교란시키라는 본서의 주장과는 노선에서 차이가 있다.


“적국을 온전히 두고 이기는 것이 최상, 적국을 파괴하고 이기는 것은 차선(全國爲上 破國次之)”라는 손자의 주장과, 대회전을 통해 주력군을 무력화하라는 클라우제비츠의 주장은 두 사상가가 생존하던 시대의 전략형태와 전쟁 방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전쟁관이 우리 시대에 적합할 것인가이다.

5. 전쟁의 기술과 현대사회의 삶

현대사회의 삶이 전쟁과 일면 흡사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문제를 덮어두고 회피하려는 자세를 떨쳐버리고 과감하게 현실과 맞서라는 본서의 주장에 공감한다.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무기력감, 자포자기의 태도가 확산되고 있음을 경고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NEET족(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 캥거루족 등 현실도피적 성향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만성적인 청년 실업이 구직 포기, 경제활동인구 이탈로까지 이어지는 실정이다. 일본에서는 자기 방에서 십수년 이상 나오지 않는 소위 ‘히키코모리’ 인구가 전체 인구의 1%에 달한다고 한다. 세상과 대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회피가 개인적인 삶의 파괴와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다소 도발적인 주장들은 자신감을 회복하고, 세상과 현실에 당당히 맞서라는 저자의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취지를 감안하더라도 그에 못지 않게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 또한 평화주의가 아닐까 한다. 물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친구조차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잠재적 적으로 보라는 저자의 주장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경쟁이 강화될수록 협력과 공생의 지혜는 더욱 소중해진다. 본서를 정독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손자병법을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전쟁의 기술 / 로버트 그린

 - seri.BookReview
 

출처 : 전쟁의 기술
글쓴이 : 지창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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