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ngbak
2007. 2. 15. 12:29
한국인과 유대인 |
우리나라 사람과 유대인을 비교하는 담론들이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다. 심지어는 우리나라 사람이 유대인과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미국이나 중남미에 이민 간 한국 사람들의 억척스런 생활력이 그런 주장의 배경에 깔려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나는 유대인과 우리나라 사람이 비슷하다는 주장에 의문을 갖는다. 민족과 민족,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는데 있어서는 비교의 조건이 우선 검토되어야 한다. 역사적 측면에서 볼 때 우리와 유대인과의 차이는 특히 세 가지 점에서 두드러진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첫째, 종교적 전통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유대인들은 전통 종교인 유대교를 믿고 있다. 온갖 박해 속에서도 유대교를 고수해 온 것은 곧 유대인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이에 반해 우리민족의 종교상황 또는 종교적 전통은 매우 특이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우리민족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전통종교를 저버리고 외래종교를 수용하면서 변신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나라의 전통종교는 선교(仙敎)적인 하느님사상 또는 한울신앙이라고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전통종교는 마침내 불교의 영향 속에 기생하게 되었고 나아가서 유교의 발흥과 함께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게다가 기독교 문화의 수입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종교 상황은 그야말로 세계화의 복판에 서 있다고 설명될 정도이다.
둘째, 유대인의 교육관은 우리와 판이하다는 사실이다. 유대인은 자녀교육에 있어서 출세와 이재제일주의(理財第一主義)를 지양하고 재능위주의 교육을 한다고 한다. 유대인은 아무리 머리 나쁜 아이라도 신이 그 아이에게 준 재능과 사명이 있다는 인식아래 교육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유대인은 이른바 수전노이기 때문에 이재위주의 교육을 시킨다는 주장들은 유대인을 비하하기 위해서 꾸며진 것들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유대인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녀교육관은 무엇이고 자녀 교육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최근에 빚어지고 있는 현상만으로 말한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출세제일주의와 돈벌이 위주로 자녀교육을 몰고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셋째, 가족주의라는 테두리에서 차이가 크게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대인은 큰 테두리의 가족주의를 유지계승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핵가족주의로 분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 온갖 박해를 받아 소멸의 위기를 겪어왔던 소수민족 유대인이 오늘날 세계 속에서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까닭은 바로 철저한 가족주의에 있었다고 분석된다. 유랑민족 유대인에게 확실하게 아이덴티티를 심어준 것이 바로 가족주의에 의한 귀속의식이었던 것이다.
유대인의 가족주의와 관련해서 얼마 전 감명 깊게 읽은 유대이민사의 한 대목을 나는 잊지 못하고 있다.
옛 러시아에서 영국에 이민 온 한 유대인의 설명에 의하면 1917년 볼셰비키 혁명 후 그들의 대가족 50여명이 영국에 정착하기까지 3단계의 계획을 통해 무려 50년이 걸렸다고 한다. 제 1단계는 혁명직후 가족회의에서 50여명의 가족이 모두 영국으로 이민 갈 것을 결정하고, 우선 가장 신체 건강한 청년 1명을 뽑아 영국에 보냈다고 한다.
제 2단계는 영국에 건너간 이 청년이 생활 터전을 잡았다는 연락이 온 뒤 가족회의의 결정에 따라 가장 머리 좋은 청년을 영국에 보낸 것이라고 한다. 1호 청년이 육체노동으로 생활 기반을 잡았으므로 2호 청년에겐 변호사나 의사가 되어 그 기반을 더욱 확고히 하는 것이 지상 과제였다.
제 3단계 회의는 2호 청년이 의사가 되었다는 보고가 옴에 따라 제3호 청년을 뽑는 가족회의였다. 이번에는 가족 가운데 가장 상재(商才)가 뛰어난 청년 한 사람을 뽑아 영국에 보냈다고 한다. 이러한 원대하고도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들 유대인 대가족은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영국에 정착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이민사, 이런 가족이야기가 핵가족 시대를 치닫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교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규행(언론인, ‘데일리 포커스’ 대표이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