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바흐

한글의 원류를 찾아서

kongbak 2006. 10. 13. 12:56

한글의 원류을 찾아서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한글은 참으로 우수하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세계적으로도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물론이고 세계적 석학들이 입을 모아 한글의 과학성을 칭송하고 있다. 문자가 없는 소수종족에게 한글을 보급하는 사업도 어느정도 성과를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한글창제 당시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아무리 영특하다 해도 단기간내에 이렇게 우수한 문자를 창제한다는 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재야 사학자와 언어학자들이 이 부분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 우리가 배워왔듯이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한 것이 아니라 전자(옛글자, 속용문자)를 참조하여 새로이 체계화하여 집대성했다는 것은 이제 일반상식화되었다. 새로 집대성하고 반포하여 널리 사용케 했다는 것만해도 세종대왕은 역대 최고의 명군중에 한분이다.

세종대왕이 참조한 전자 즉 고대문자의 힌트는 한(환)단고기에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기성 사학자들이 한단고기를 위서라 하여 인정하려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이 자기나라의 고대사에 대한 단서와 증빙들을 자신들이 만든 교과서와 틀리다고 하여 거들떠도 보지 않으면서 오히려 조작되었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제는 재야 사학자들을 통해 한단고기의 내용들이 하나하나 증명되어 지고 있다. 얼마전 한 천문학자가 한단고기에 나오는 별자리를 연구하여 그 시기와의 일치성을 증명해 내었다. 또한 한단고기에서 전하는 천부경이 그동안 최치원의 해설서로만 전해져 오다가 원문 갑골문자가 발견됨으로해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림1. 한단고기 천부경의 갑골문자 원문




한단고기가 위서가 아닌 진문으로 이해하고 들어가면 수많은 고대사들이 하나하나 들어맞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 전해 내려오는 수많은 역사서의 내용들과 비교해도 일치하는 부분들이 수없이 발견되어 지고 있다.

한단고기에서는 '제3세 단군이었던 가륵단군께서 BC2181년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고 이를 ‘가림다’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또한 이전에는 고대 숫자인 '산목'이라는 것과 고대 상형문자(갑골문자)인 '투전목'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위의 천부경의 글자들과 아래 한단고기에서 전해지는 문자들을 비교해 보자. 산목과 투전목 글자 형태들이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나아가 소리글자인 '가림다' 문자를 만들었고 이것이 실제 존재했던 고대문자임을 알 수 있다.



그림2. 한단고기 가림다 관련 원문



그러면 가림다는 어떤 원리를 가지고 만들어졌을까? 가림다도 한글과 마찬가지로 모음과 자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단고기에서는 모음 11글자는 '천지인'을 바탕으로 만들었고 자음 27글자는 곧음(직)과 꺾음(곡)을 조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환웅은 환인천제 이래로 다만 입에 의존하고 전달하는 것을 능사로 알고 보존하는 법이 없으니 이에 신지 혁덕에게 문자를 만들라고 하였다. 명을 받은 신지 혁덕은 어느날 사슴을 사냥하다가 종적을 놓쳤는데 발자국을 보고 어디로 달아났는 지 알게 되어 깊은 사색의 끝에 문자를 만들었는데 비로소 태고문자가 시작이 된 것이다.'


'환웅이 임검을 낳아 임검씨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았다 임검씨는 태백산 박달나무숲에 신시(神市)를 크게 열고 천부의 음에 준하여 어문을 정리하였다. 이로부터 10년마다 신시를 여니 어문(語文)이 통일되고 천하가 하나로 평정되었다.


'환웅천황의 태고문자(太古文字)가 만들어진 지 2천년이 흘러 지방의 사투리가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아 백리 영역의 나라 내에서도 글자가 난립하고 이해하기 어려우니 3세 단군 가륵은 삼랑을보륵에게 명을 내려 정음(正音) 38자를 정리하여 널리 세상에 내어 놓으니 이가 바로 가림토
혹은 가림다 또는 산수가림다인 것이다.'



이것을 보면 가림다 이전에도 사슴 발자국을 본떠 만든 '녹도문'이라는 것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전해지는 녹도문은 글자의 형태로 볼 때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점토판에 새겨진 쐐기형 글자가 아닌가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림3. 메소포타미 쐐기문자 점토판



진흙으로 만들어 반쯤 건조한 점토판에 쐐기모양의 송곳을 꾹꾹눌러 글자를 쓰는 쐐기문자는 언뜻보면 새나 짐승의 발자국모양처럼 보인다.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이 동방에서 이주해갔다는 학설이 있기도 하니 쐐기문자가 녹도문일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결론적으로 한글의 원류는 가림다이고 가림다의 원류는 녹도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본다. 그러나 아직도 수 많은 의문들이 꼬리를 문다. 갑골문자와 같은 상형문자들은 지속적으로 개량되어 지금의 한자와 같은 형태로 발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나 왜? 가림다는 중간에 보편적 사용성을 잃어버렸다가 세종대왕에 의하여 복원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의문에 의문을 더하니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2003. 10. 09 風雅

 

그림글의 원류를 찾아서



우선, 한자(漢字) 또는 한문(漢文)이라 불리는 이름 자체가 유감이다. 이 단어는 심원한 동양 역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일본인들이 처음 지어 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아시아의 역사에서 한족이 잠시 이룩한 한(漢)나라만이 최초의 국가였고 고도의 문명을 이룩해 한자를 만들었다는 판단에 한자라 이름지었던 것이다. 그들은 먼 옛날의 죽간(글을 쓴 대나무 다발)이나 갑골문(짐슴의 뼈에 쓴 글)에 대한 인식도 전무했던 것이다. 한편 우리의 '세종대왕'께서도 훈민정음 발표시 한문이 중국의 글이라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이 글의 아래로는 한자를 '그림글'로 바꾸어 부르도록 하겠다. '글'의 어원 또는 원형은 바로 '그림'에서 비롯된 것임을 새겨두었으면 한다.)

그러면 그림글을 의미하는 단어들을 이전에는 어떻게 표기했는가를 살펴보자. 단위 글자들은 순 우리말인 글 또는 문자(文字)라 했고 문자의 모음을 문서(文書)라 했으며 낱장 문서의 묶음을 책(冊)이라 했다. 여기서 책이란 그림글의 모양을 살펴 보면 지금과 같은 종이책의 모서리가 아닌 죽간의 형상을 본 떠서 만든 것이다. 이 글자를 옥편에서 찾아보면 '책 책'이라 되어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예전부터 즉 글자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우리는 그것을 책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의 근거는 다른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나무 살을 펼쳐 실로 이어 묶고 종이를 바른 것을 부채라 하듯 무엇을 다발로 묶은 것을 우리는 '채'라 부른다. 이러한 '채'가 '책'이 되었음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림글은 말 그대로 어떤 형상 또는 형태등을 본 떠서 초기 글자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그저 잘 새겨보면 그 그림의 뜻을 얼추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지금은 우리만의 소릿글이 있어 소릿글을 먼저 배운 사람이라면 한자교습책만 보고서도 혼자 뜻과 소리를 공부하여 터득할 수 있다. 그림글의 의미를 우리말로 풀어 가르칠 때 훈독(訓讀)이라는 것을 사용한다. 중국에서 중문을 가르칠 때 중문 교본은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물론 전부 중문으로 되어 있음은 뻔한 일이다. 물론 개중에는 어린이 영어 교본이 그러하듯 그림을 섞어 풀이해 놓은 것도 있다. 이것은 그림을 보고 글자의 뜻을 이해한다 손 치더라도 누군가 그 음을 가르쳐 주어야만 그 글자에 대한 바른 소리(이미 약속된)를 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그림글의 음을 이해해 보자. 큰 대(大)라는 글자와 클 태(太)라는 글자다. 우리는 단음으로 '대' 또는 '태'라 발음한다. 그러나 다른 아시아권 대부분의 나라들은 '다이'와 '타이'라고 발음한다. 기타 다른 언어권도 마찬가지이다. 일본말 대화(大和)는 '다이와'로 대만(臺灣)은 타이완(Taiwan)으로 또한 같은 뜻의 다른 글자 태(泰)는 태국(泰國)과 같이 타이(Thailand)로 발음한다. 이럿듯 홑글자를 다른 나라에서는 홑발음이 아닌 긴발음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만약에 그림글이 중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지고 우리에게 전해졌다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그 발음 방식을 그대로 따라야 마땅하다.

최근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기업체 현대(HYUNDAI)를 외국 사람들은 '현다이'라 발음한다. 아무리 교정해 가르쳐 주어도 그들에겐 '현대'라고 모아 발음한다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여기서 한글의 모아쓰기식 때문에 긴발음이 홑발음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들은 그렇게 습성되어 왔기 때문이고 우리는 한글 이전에도 홑글자 홑소리에 대해 오랜동안 습성되어 내려 왔기 때문인것이다. 자 이제, 현대의 예처럼 그림글 또한 우리쪽에서 다른쪽으로 흘러들어가면서 그들식으로 발음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중국에서 새로 만들어진 글자들이 우리쪽으로 역수입 될 때는 그들식의 뜻과 음이 따라 들어 온 것들도 상당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면 이제 고고학적인 얘기를 좀 해 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글의 원형은 갑골문에서 출발한다. 몇년 전 현재 중국땅인 산동성 지역에서 옛 갑골 문자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그 갑골의 연대는 기원전 2300년경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갑골문자의 시원을 상(商, 또는 殷)나라로 보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그 시대보다 한참 이전에도 갑골문자가 있었음이 판명된 것이다. 이때는 중국이 자기 조상의 나라라 주장하는 하(夏, BC1800~1400)나라가 태동하기 약 500년 전인 것이다. 그 시대에 글자를 보유할 정도라면 고도의 문명 집단이 있어야 한다. 그때가 바로 (고)조선이 산동성 일대뿐만 아니라 대륙을 지배하던 시기인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얼마전 고려말 충신 농은 선생의 유품인 '농은유집(農隱遺集)'에서 다량의 갑골문이 발견되었다. 여기서 발견된 갑골문중에 11글자는 중국이 발견해 보유한 '은허갑골문'이나 '금문집'에서 조차 한번도 발견되지 않은 글자들이다. 역사의 흐름은 원류로 통하는 법이다. 이제 그림글이 중국에서 만들어졌고 아시아 각국으로 전파되었다는 생각은 과감히 버리도록 하자. 고대역사는 어쩔 수 없이 최소의 증거에 의한 최대한의 추론이다. 중국은 얼마전 '하상주연표(夏商周年表)' 정정발표를 통해 '하'나라의 태동기를 기원전 2070년경으로 대폭 끌어 올리면서 반만년이 아닌 1만년의 역사라고 우겨대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1만년의 역사중  8천년은 우리의 역사를 무단 차용한 것이다.

한단고기에 의하면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그림글외 '가림다'라고 하는 소릿글도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런데 수천년의 내림 역사 속에서 우리가 만든 소릿글을 중간에 왜 잃어버렸던 것일까?  우선 소릿글을 보자. 소릿글은 그 특성상 말이 통하는 동일 집단에서만 통용될 수 있다. 본시 고조선이 제국을 형성했다면 다민족 집단의 연합체로 구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거기서 글을 전파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소수의 왕권 계층에서만 통용되다가 그 왕조가 무너지면서 글자 또한 그대로 사라져 버린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반면에 그림글은 글자 모양 그대로 쉽게 이해되고 통용 전파되면서 발전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한가지, 아시아에 지속 발전되어 내려온 그림글은 왜 우리가 중국에서 수입된 것처럼 인식되어지고 있을까? 그림글이 언제쯤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전파되었는지 딱 찝어서 얘기할 수 있을까? 답은 그 누구도 언제쯤이라고 얘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중국에서 넘어왔고 중국의 문자라고 인식하고 있을까? 그것은 그쪽에서 문서로 더 많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전 대륙을 점령하면서 문명과 글자 또한 고스란히 접수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번창기에 그쪽의 수 많은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책들이 우리나라로 수입되면서 새로 만들어진 글자들 또한 같이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반도로 밀려나 소수로 전락한 우리나라는 지식의 수입국가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이다.

안타깝게도 역사적 진실은 흙이 되어 땅속으로 스며 들었으니, 우리 스스로 땅을 헤치고 사료를 모아 연구 발전시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하지 않을까 한다.

2004. 06. 15 風雅